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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n 02. 2024

불사신 불나방

독일라이프 1화. 나도 만만하진 않아

타닥타닥...! 타닥타닥타닥...!


핸드폰 화면으로 6월 1일 0시 0분을 보고 잠에 막 들었을 때다. 독일에 입국한지 이틀째 되는 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다짐 비스무레한 마음을 품고 누웠는데 무엇인가 자꾸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자려고 했지만 점점 거세지는 소리에 불을 켰다.


나방이었다. 꽤나 몸집이 크고 두툼한 녀석이다. 나방은 숙소 방 안을 사방팔방 불쏘시개처럼 날아다녔다. 문을 열어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나에게 달려들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는 순식간에 겁에 잡아먹혔다.

 

단잠을 깨운 이 불청객은 새벽 내내 방을 이리저리 휘젓다 마침내 잠잠해지더니 스스로 목숨을 다한 듯했다. 핸드타올을 몇겹이나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녀석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다시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몇분 후였을까. 타닥타닥... 타닥! 타다닥! 나방은 죽지 않았다. 쓰레기통 안에서 비닐봉지에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었다. '하 진짜 왜 이렇게 질기니. 왜 하필 나야...'

 

그런데 순간 이 나방이 두려움을 형체화 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라고.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내쫓고 없애려 해도 내 마음과 머릿속을 마구 뒤흔들고 있는 모습이 똑 닮았다.


이렇게 생각하자 오히려 나방이 무섭지 않았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네가 아무리 활개쳐봤자 나를 집어삼킬 순 없어. 난 생각보다 강해.


나방 한 마리에 깨달음을 얻는 꼴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다. 5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언어가 전혀 안되는 상태로, 아무런 사전정보도 없이 무작정 독일 땅을 밟았으니 말이다. 설렘보다는 불안함과 막막함이 압도적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했던 입국심사는 독일살이에 대한 일말의 설렘마저 산산조각 냈다. 입국심사 직원에게 인종차별을 대차게 당했고 하마터면 입국거절을 당할 뻔했기 때문이다.

 

그 독일인 남성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자기네 나라에 와서 사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챙겨온 베를린 어학원 등록증과 숙소 증빙서류 등을 보여주고도 한참이나 모욕을 치른 후에야 간신히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당장 한국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질 줄이야. 요동치는 멘탈을 부여잡고 내 몸만한 무거운 캐리어를 찾은 뒤 공항에서 택시를 탔다. 베를린으로 넘어가기 전 며칠은 공항 인근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묵는데 여러모로 그 상황에서는 택시가 최선이었다.


어쭙잖은 영어로 택시운전사와 나눈 대화는 그나마 큰 위안이 됐다. 그는 공항에서 내가 겪은 수모를 듣고 자기 일처럼 분노했다. "독일은 안전한 곳입니다. 아시안을 비롯해 다양한 국가 사람들이 살고요. 누군가가 인종차별 같은 언행을 하면 경찰이나 가까이에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요청하세요!"

 

하지만 위로가 무색하게도 그는 고작 15분 거리에 43.7유로(약 6만 5600원)을 요구했다. 또다시 실랑이 벌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기에 억울하지만 순순히 지불했다. 숙소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고 따뜻한 이야기를 해준 대가라고 치자.

 

독일이라는 나라에 품은 애정과 환상은 이렇게 첫날부터 끝났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난 생각보다 강해' 사실 이 말은 불사신처럼 죽지 않는 나방에게만 한 말이 아닌 셈이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독일 라이프에 건네는 나의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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