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혼성 도미토리 경험기

독일라이프 18화. 안하던 짓을 해봤다

by 모모

독일살이 8개월차,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다. 늪에 잠긴 나날 속 이러다 정말 큰일나겠다 싶어 '살기 위해' 무작정 떠났다. 오스트리아 빈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떠날 수 있던 이유는 언어와 화폐가 같아서다. 오스트리아는 독일어를 사용하는 국가이고, 화폐도 유로를 쓰니 상대적으로 부담감이 적었다.


일주일간 나홀로 오스트리아 여행에서 겪고 느낀 다양한 에피소드와 생각들. 이 조각들을 모아 기록해보려 한다.



[Episode 1] 6인실 혼성 도미토리


3n년 인생 처음으로 도미토리에서 묵었다. 그것도 6인실 혼성으로, 무려 5박이나. 불특정다수를 싫어하고 평소에도 혼자 호캉스가 취미였던 나에겐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이십대도 아닌 나이에 여자 혼자 말이다.

하지만 현재 일을 하고 있지 않기에 가장 저렴한 금액대로 숙소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아낀 돈으로 좋은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으니 감수해야지. 떠나기 이틀 전날 밤에 눈 딱 감고 예약·결제를 진행했다. '그래. 올해는 안하던 짓 한번 해보자!' 이렇게 생각하니 약간의 기대와 흥미마저 깃들었다.

베를린에서 빈까지 먼 여정 끝에 숙소 도착. 체크인을 하고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자마자 후회했다. 어떤 배불뚝이 중동 남자가 침대에 누워서는 입실하는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렇다고 내게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뚫어져라 봤다.


그는 한쪽은 맨발, 한쪽은 양말을 신고 있었는데 손으로 자기 발가락을 벅벅 긁고 흔들고 냄새 맡는 행위를 반복했다. 발 각질이 날아올 것만 같고 비위가 너무 상했다. 속으로 '내가 미쳤지... 지금이라도 다른 숙소 잡을까' 고민했다. 도미토리의 첫인상은 끔찍 그 자체였다.


첫날밤, 그 6인실에서 나만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막막함은 배가 됐다. 여기서 어떻게 5일이나 버티지. 자려고 누웠을 때 낯선 남정네들이 소변 누는 우렁찬 소리, 부룩부룩 방귀 뀌는 소리에 곤욕을 치렀다. 귀마개를 챙겨와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래도 역시 나는 어떤 환경에서든 적응이 빠르고 긍정 스위치를 잘 켜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깨달았다. 다음날 오전 직원들이 어느 시간대에 객실 청소를 하러 오는지 파악하고는, 매일 청소 직후 제일 뽀송할 때 아무도 없는 화장실과 욕실을 사용했다.


나름 노하우가 생기니 숙소가 더할나위 없이 좋게 와닿았다. 빈중앙역과 도보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데다가 모든 명소, 관광지와 접근성도 뛰어났다. 프런트 직원들은 무척 친절했고 객실은 하루도 빠짐없이 청결하게 정리됐다. 이 금액에 이정도면 진짜 훌륭하지.


심지어 '오히려 좋아' 모드가 작동했다. 방에 전혀 잘 보이고 싶은 사람이 없으니, 외출 후 들어오자마자 화장을 말끔히 지우고 추레한 모습으로 있어도 아무 거리낌 없었다. 못생기게 있을수록(?) 그들의 -혹시 모를 낯선 여자에 대한 옅은 호기심-을 말살할 수 있어 뿌듯했다.


이후 그 중동 남자가 떠나고, 나 외에 또다른 여성이 입실을 하자 마음이 확 편안해졌다. '심리적 안정감이 이렇게나 중요한 거구나' 하고 몸소 느꼈다. 콜롬비아에서 온 그녀는 나와 비슷한 또래였으며 내 위층 침대에 배정됐다.


우린 같은 날 백팩에 열심히 짐을 챙긴 후 엇비슷하게 퇴실했다. 나는 내 보금자리가 있는 베를린으로, 그녀는 다음 행선지인 프라하로. 둘은 밝게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글이 생각보다 길어진 관계로 다른 에피소드들은 다음편에 이어서 써야겠다.


(공포의 혼성 도미토리 숙박 첫날밤. 침대 커튼을 치고 숨죽여 누워있던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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