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이 심해지면서 치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증이 심해지면서 치매가 걱정되
기억의 흐름을 붙잡는 기록의 힘
글쓰기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남겨진 글은 기억의 증발을 막아준다
일단 오늘 한 줄 써봅시다-김민태
나의 문장
내나이 쉰 다섯
언제부터인가 깜빡이는 일이 잦아졌다.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어릴 적부터 나는 종종 무언가를 잊곤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신발주머니를 놓고 오거나 준비물을 빠뜨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기억 자체의 흐려짐을 느낀다. 남편이 "지난번에 말했잖아"라고 해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때로는 내가 정말 듣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듣고도 잊어버린 것인지조차 헷갈린다.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자녀들의 출생 시간이다. 딸이 태어난 시간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두 아들의 출생 시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출생증명서를 찾으려 했지만 이사를 오면서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병원에 문의해보니 오래전 기록은 이미 폐기되었다고 한다. 내 아이들의 태어난 시간이 미궁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요즘 가장 두려운 병은 치매다. 암보다도 더 무섭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망'이나 '귀신 들린 병'이라는 의미의 망령, 노망이라 불리는 병을 몇 년을 앓다가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수명이 길어지면서 오랜 세월 동안 치매를 겪는 경우가 많다. 남편에게 농담처럼 말했다.
"여보, 내가 치매에 걸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름마저 잊어버리면, 매일 내게 당신의 이름과 내 이름을 가르쳐 줘요."
올해 여든 다섯이 되신 아버지는 오랫동안 매일 밤 작은 수첩에 하루를 기록하신다. 빌려준 연장의 종류와 그날 지출한 금액, 집에 오신 손님과 날씨 같은 소소한 일상을 적는다. 단 몇 줄의 메모지만, 이 기록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빌려준 연장을 돌려받아야 할 때 누구에게 빌려줬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상대가 잊어버린 경우에도 증거가 되니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다.
나도 해야 할 일이 많아지면서 일정이 겹치는 일이 종종 생긴다. 가끔은 같은 시간에 두 가지 약속을 잡아 하나를 포기해야 하기도 한다. 일정만 제대로 기록했다면 이런 실수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제는 기억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약을 검색해보고 후기를 읽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하는 습관을 되찾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한때 꼼꼼하게 메모를 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메모 때문에 낭패를 겪은 후엔 일부러 한동안 기록을 피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기록이 필요하다. 책을 읽어도 내용을 금방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처럼 독서 후 간단한 기록을 남겼다면, 읽은 내용을 더 오래 기억하고 깊이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기록을 시작하려 한다. 단순히 하루 일과를 적는 것만으로도, 오늘이 어떤 날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 기록을 다시 읽으며 지난 날을 떠올리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의 나 자신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 것 같다.
기억을 붙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록이다. 사소한 약속이든, 지나가는 생각이든, 중요한 순간이든 글로 남겨두자. 언젠가 그 기록들이 과거의 나와 다시 연결되는 소중한 다리가 되어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