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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리 Dec 06. 2018

개인, 사회, 조직에 대한 판사의 에세이

책  <판사유감> 리뷰

저자의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판사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 이미 주어진 법에 맞추어 판결을 내리기만 하는게 아니라, 판결의 과정에서 양측 사람들의 입장에 공감하고, 상처를 어루만지고,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걸 알게 되었다. 특히 이 저자는 무엇보다 다각도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느꼈기에, ‘판사’는 어떤 직업인지 궁금해서 이 책을 집었다. 어떤 생각으로 판사를 하고 있고, 하면서 뭘 느끼는지.


이 책은 개인, 사회, 조직과 관련된 저자의 생각을 적은 짧은 에세이를 수십 편 모아서 구성되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정연한 글로 대변해주는 부분은 속시원했다.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글은 핵심을 탁 짚는 느낌이었다. 평소에 관심이 많은,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다룬 부분은 문제점 뿐 아니라 개선점을 제시한게 신선했고, 아 이게 문제일 수 있겠구나, 이렇게 나아질 수 있겠구나 싶어서 작은 희망의 불빛을 본 것 같다.


한 문장 한 문장 기억하고 싶은 약 270페이지의 내용 중에, 딱 세 부분을 꼽아본다. 내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 준, 내가 배울 점 세 가지이다.




지성과 반지성

요즘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등의 편 가르기는 다 본질과 직결되지 않는 '이름 붙이기'에 불과하고, 진짜 대립하고 있는 것은 지성과 반지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이 지성입니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안다고 하는 것이 지성일 것입니다.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또한 지성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저는 아무것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다행히 재판 제도라는 것은 이러한 인간 인식의 불완전성을 전제로 고안된 것이기에 법에 의해 부여된 '입증책임'이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답을 모르겠으면 입증책임을 지는 쪽이 재판에서 지게 됩니다. 형사소송에서는 검사가 유죄의 입증책임을 지는 것이기에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입증하지 못하면 - 즉 모르겠으면 - 무죄인 것이고요.

하지만 사회에서의 문제들은 모르겠으면 아직 결론을 내릴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매사에 꼭 선명한 결론을 내리려고 무리하는 것은 오만인 동시에 무지입니다. 근거 없는 확신을 유포하는 것은 무지를 넘어선 범죄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미괄식 증후군

우리 사회는 자기주장을 수정하는 사람에 대해 '소신이 없다', '말 바꾸기를 한다'며 비난하는 일이 많지요? 틀린 이야기를 끝까지 고집하면서도 '이게 내 소신이다!'라는 스탠스로 일관하는 사람에게는 일단 한 수 접고 인정해 주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소신'이라는 말은 면죄부가 아닙니다. 히틀러도, 무솔리니도, 스탈린도 평생 소신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소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저는 소신 강한 사람이 오히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얼마나 오류에 빠지기 쉬운지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자신의 결론이 잠정적인 것에 불고함을 인정하고, 주저 없이 결론을 수정할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반대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논리'나 '당위'로 절대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공감'해야 비로소 변화하지요.

 '당신 말씀이 옳습니다. 다만 이런 측면도 배려하여 주시면 좋겠어요'라는 스탠스로 설득하면 상대는 비판받는 수동적 지위가 아니라 관용을 베푸는 능동적 지위로 격상되기 때문에 훨씬 관대해지지요.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편적인 논리와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운 근거를 들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심각한 사법 불신을 낳은 이유 중 상당수가 이런 문제에 대한 오해인데, 언론이나 대중들이 법에 무지하여 오해한다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법원이 먼저 오해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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