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에게 여자는 어떤 존재였을까? 궁금한 까닭이 있다. 우선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좀 분명하지가 않다. 남자 주인공과 ‘관계’를 맺는 여인들에게는 영혼의 얼굴이 안 보인다. 따스하고 깊고 부드러운 살의 향연이나 향기가 없다. 섹스를 할 때도 유혹을 할 때도 왜 그러는지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무리 관계를 해도 관계의 단절만 확인되는 꼴이다. 이건《성(城)》이나《소송》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요컨대 낭만적 사랑의 빛나는 축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는 이 여자들은 순전한 섹스 상대이거나 권력자의 하찮은 전리품 같은 즉물적 존재일 따름인 것이다. 톨스토이의 위대한 소설들이 보여주듯 소나 말은 물론이고 하찮은 미물들까지도 이름을 붙여주고 인간에 못지않은, 아니 때론 인간 이상의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진 못할지라도 남성과는 달리 생명을 잉태하는 존재로서 본원적 생명과 훨씬 가까운 여성을 그런 식으로 취급하는 이유가 뭔지 나는 궁금한 것이다.
마흔한 살로 생을 마감한 카프카가 세 번의 약혼을 다 파혼으로 끝낸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의 단편〈판결〉이 내 흥미를 끄는 것은 그 부제가 ‘펠리체 B. 양을 위한 이야기’라는 사실 때문이다. (카프카가 두 번 약혼했다가 두 번 파혼한 여인의 이름은 펠리체 바우어다) 첫 파혼을 결행할 즈음에 쓰기 시작했다는 이 소설을 통해 펠리체 B. 양, 그러니까 약혼녀 펠리체 바우어에게 카프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내가 보기에 딱 한 마디가 아니었나 싶다.
‘아, 나는 당신이 싫소. 당신과 결혼하는 건 죽도록 싫소……!’
소설은 어떤 여자와 약혼을 하게 된 젊은 상인 게오르크가 러시아에 사는 친구에게 자신의 약혼 사실을 편지로 알리는 와중에 늙은 아버지의 ‘판결’, 즉 ‘물에 빠져 죽어라’는 명령에 따라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장면으로 끝이 나는 것인데, 도대체 그는 왜 파혼 후 같은 여인과 또 약혼을 한 것일까? 친구 막스 브로트 집에서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의 인상을 29세의 카프카는 일기에다 이렇게 썼다.
'하녀 같아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다. 뼈가 튀어나오고 무표정한 얼굴, 공허한 분위기. 거의 비뚤어진 코, 뻣뻣한 금발의 매력 없는 머리칼, 억센 턱 ' 운운.
그런데, 왜 ……? 알 수 없는 게 남녀 관계라지만 여자에 관한 카프카의 취향, 시선, 정서, 바람이 무언지를 나는 결코 알 수 없을 것 같다. 그의 소설들처럼 일종의 미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다. 그래서 남자로 살아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니 어쩔 수도 없었다. 신이 남성과 여성 두 성만 말고 중성이라는 성의 인간을 창조하고서 선택의 자유까지 주었다면 나는 중성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뭐, 중성? 당신, 게이도 레즈도 아닌 이상한 놈 아냐? 의심부터 할지는 몰라도 중성의 인간으로 살고 싶다는 건 딴 뜻에서가 아니다. 내가 막 떠올린 사람은 눈빛 맑은 남자 시인 신동엽이니까. 그는 남북 분단과 오랜 대립의 슬픈 현실을 바라보며 남과 북의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서’ 혼례 올리는 걸 꿈꾸었었다. 상상은 자유다, 바람도 구름도 경계가 없듯이.
어쨌거나 나는 남자임을 면치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다고 늘 남자 편을 들면서 살았다는 건 아니다. 외려 반대다. 학교를 다닐 때든 군대든 직장이든 남자끼리 모여 여자를 안주 삼아 시시덕거리는 게 나는 정말 싫었다. 그때의 나는 속된 말로 ‘소심한 남자 새끼’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자를 어떻게 따먹었다는 둥, 알고 보니 그 여자는 걸레더라는 따위의 쓰레기 무용담은 말할 것도 없고 은근-노골적으로 수컷임을 과시하는 남자들의 흔해빠진 허세에도 야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런 말이 오가는 껄렁패 뒷골목 분위기에 어정쩡하게 편승을 했을 때야 왜 없었을까. 나도 남잔데. 그래도 그런 따위 남자들은 내 경멸의 대상이었다. '걸레'와 놀아난 놈은 걸레가 아닌가? 젊을 때의 나는 혼잣말을 하곤 했다. ‘진짜 남자는 그런 게 아니야.’ 나이가 더 먹어가면서는 좀 달라졌다. 뾰족한 의식의 촉수가 세파에 깎여 적당히 둥글둥글해졌다고 할까. 수컷 과시 남자 지인을 만날라 치면 나는 짐짓 말한다. “야, 너 아직도 남자에서 인간으로 진화를 못한 거야?” 어쩌면 ‘쎈 수컷’에 대한 남모를 선망을 마음 깊숙이에 숨기고서 말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을 거다. 경북 영천이라는 시골에서 대도시 대구로 전학 온 나는 촌놈에다 작은 키에 숫기도 없어 이래저래 주눅이 들어 있었다. 쉬는 시간에 철봉대에 매달려 혼자 놀고 있는데 한 녀석이 비키라고 시비를 걸길래 니가 뭔데 어쩌고 몇 마디 말다툼 끝에 ‘야 임마, 한판 붙자’고 한 건 나였다. 그러자 놈은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제 패거리를 대여섯 명이나 데리고 나타났다. 비겁했다. 내가 먼저 코피가 터졌고 싸움은 싱겁게 끝났는데 나중에 보니 녀석은 권투를 배웠다고 했던가 뭐랬던가.
쉬는 시간 교실 뒤쪽에서 내 이쁜 짝지 여자애를 들먹이며 이상한 험담을 해댄 것은 바로 그 패거리였다.
“쟈 옷에 빨간 물 든 거 봤나? 그거 피다, 피.”
여자애의 가슴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거였다. 그 피가 무얼 의미하는지 저들끼리는 다 알고 있다는 투였다. 여자와 피. 나로선 상상이 잘 안 갔지만 어디가 다쳐서 그렇다는 말이 아닌 건 분명했다. 남자하고 ‘해서’ 나온 피라는 놈들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나는 내 자리, 그러니까 여자애의 옆자리로 갔는데 그건 수업종이 쳤기 때문이다. 나는 기회를 봐 여자애의 가슴께를 살폈다. 물론, 아니었다. 걔는 감청색 원피스에 하늘하늘하게 속이 비치는 흰 윗도리를 바쳐 입고 있는데 가슴께로 선명하게 드러난 건 선홍색 꽃무늬였다.
그렇지. 저건 피가 아니라 꽃이야, 빨간 꽃!
놈들에게 소리치지 못하는 내가 억울했다. 때 이른 사춘기였을까? 키가 크고 씩씩한 머슴애보다도, 예쁜 얼굴에 예쁘게 차려입은, 깊은 산속 옹달샘 같은 눈망울의 여자애를 보면 그런 여자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동안 했던 것 같다.
여자의 살이 그리워서 (넘치는 성적 욕구를 어쩌지 못해서-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처음으로 ‘역전앞’ 어두컴컴한 사창가(私娼街)를 찾아갔던 것은 스무 살 때였다. 사창가. ‘창녀(娼女)들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사사로이 모여 몸을 파는 거리’. 그래, 나는 그 ‘거리’를 한번 걸어볼 결심을 한 것이다. 밤의 여인들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윽고 한 여인이 내게 접근해 왔다.
“잠깐 놀다 가. 잘해 줄게.”
가슴이 쿵쿵 방망이질을 했다.
“학생인데요.”
바보 같이 대꾸하곤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학생은 그게 없나? 상관없어, 얘.” 여인은 한 손으로 내 허리띠를 바짝 잡고는 좁고 어두운 골목 안으로 나를 밀어 넣으려 했다. “돈은 있지? 잠깐이면 돼. 응?” 다급한,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그러고는 또 뭐랬던가? 재래시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아직 마수걸이도 못했다’는 말을 좀 다르게 했던 것도 같고 ‘난 배가 고파 ’ 한 것도 같지만 분명한 건 내 심장은 콩알만 해지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는 사실이다. 여인에게서 놓여나기 위해 내 허리띠를 꽉 쥔 그녀의 손가락을 조금 비틀자 “아야, 아파, 아프단 말이야.” 대번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부러 그런 게 아니었다. 붕대가 감긴 엄지손가락. 이유야 알 수 없지만 다친 손인 것이다! 나는 여인의 얼굴을 훔쳐보지도 못했다.
아, 미안해요. 누나, 정말 미안합니다.
나는 숨이 찰 때까지 달렸다. 그 거리에서 도망을 쳤다. 하지만 ‘아프단 말이야.’ 하는 여인의 호소-애원-절규는 어쨌거나 당도는 한 우리 집에까지, 내 방 안까지 따라왔었다.
여자, 하면 즉각 작동하는 당신의 정서를 한 단어로 표현해 보시오. (단, 이때의 여자에서는 가족 안의 여자는 뺄 것. 대저 혈육이란 순수 연민이나 슬픔 그 자체가 아니라 칡넝쿨처럼 얽혀있는 온갖 복합적인 감정부터 불러일으킬 테니까.)
이런 설문이 주어진다면 나는 즉각 답할 수 있다. 연민. 아니 슬픔. 아니 연민. 왜냐고? 그야 나도 잘은 모른다. 내 핏줄 밖의 세상 여자들에 대한 나의 대책 없는 연민 혹은 막연한 슬픔이 대체 무엇에 연유하는지. 이 본능에 가까운, 너무나도 주관적인 감정의 자기주장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불가능할 것 같다. 그러나 여자, 하면 미상불 떠오는 것은 오히려 남자에 관한 것이라는 건 일단 말해 두자. 요컨대 여성에 대한 오래고 오랜 남성 지배의 완강한 ‘놋쇠 하늘’ 같은 역사에 관한 것 말이다.
아, 장구한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남자들의 크고 작은 억압과 폭력으로 고통받고, 숨 막혀하고, 때론 한을 품고 죽어간 무수한 여자들의 울부짖는 소리와 일그러진, 슬픈 얼굴이 내 앞에 떠오른다. 분노한, 혹은 절망의 시간들이 만들어낸 달관한 듯 무표정한 얼굴도. 이럴 때면 어떤 남자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되리라.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으랴. 내가 남자인 한에서는 수미산보다 크고 갠지스 강의 모래알보다 많을 남자 일반의 죄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을.
그러나 내가 연민이나 슬픔을 느끼는 여자는 ‘십자가’의 여성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나는 늘씬한 여자의 멋진 에나멜 하이힐을 볼 때도 왠지 가슴은 찌르르 운다. 연민이다. 곱게 화장을 한 여자를 볼 때도 그렇다. 이유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럴 때가 있다는 거니까.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안톤 시나크처럼 나도 ‘내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여인들’이란 제목의 글을 쓴다면 어쩌면 한도 끝도 없지 않을까도 싶다. 세상엔 저마다의 말 못 할 사연을 가진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좋은 남자도 있고 나쁜 여자도 있다는 걸 난들 왜 모를까. 그악하고 거친, 천박해 보이는 여자는 나도 싫다. 하지만 남자가 그럴 때와는 다르게 느끼는 게 나다. 이런 점에서 나는 공평하지 못하다. 꼴사나운 남자는 그냥 그대로 봐주기가, 상대하기가 즉각 싫어지는 것이지만 여자는 그렇지가 않은 것이다. 남자완 달리 여자에겐 내가 모르는 어떤 이면이 있는 듯 느껴진다. 행동거지가 밉고 싫은 여자를 만날라 치면 내 감성적 사고는 대개 이렇게 돌아간다.
이유가 있을 거야. 사연이 있을 거야. 저건 겉으로 그럴 뿐이고 그 속에는 ‘억척 어멈’도 있고 ‘막달라 마리아’도 있을 거야. 숨 죽여 우는 소녀도 있고, 날개를 다친 새, 뿔이 꺾인 사슴도…….
그건 남자도 마찬가지야! 즉각 나를 계몽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그러나 나는 나의 편파적인 정서와 태도, 여자를 연민하고 남자에 반해 여자를 편애하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다. 남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야, 내가 남자인 건 맞지만 이걸 이유랄 수는 없다. 굳이 궁리해 보노라면 여자에 대한 나의 연민은 어쩌면 여자에 대한 두려움에 기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는 된다.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존재 앞에서는 우리는 비겁하게도 신중해진다. 고분고분해진다. 몸을 낮춘다. 혹은 나를 주장하지 않고 그의 편이 되고자 한다. 무섭기에.
헤겔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각성한 노예가 어떻게 진정한 주인-자유인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주인이 주인일 때는 주인만 인식한다. 자기밖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예는 각성을 하는 순간부터 자신의 참된 실상뿐 아니라 주인의 실상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도 함께 알게 된다는 것이 이 ‘변증법’의 요체. 요컨대 노예가 주인과 노예의 관계라는 굴레를 벗고 자유인으로 다시 탄생하는 순간만큼 주인에게 두려운 것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