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 시간 거리의 아침 산책을 나설 때면 서가에 꽂힌 책을 한 권 빼내 가곤 한다. 길은 폭이 5~6m이고 완만한 구간이 많아서 걸어가며 책을 읽어도 별 문제가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두 개의 눈 말고도 제3의 눈이라 할 어떤 감각이 있다는 건 맞는 말 같다. 눈은 책에 가 있고 다리는 제 혼자 걷고 있어도 아직까지는 어디에 부딪치거나 자빠지거나 한 적이 없다. 책 속에서 좋은 구절을 만날 때면 멈춰 서서 밑줄을 긋거나 (나는 색연필로 밑줄 긋기를 좋아한다) 산길 가에 고맙게도 마련된 나무 벤치에 앉아 5분이고 10분이고 집중해 읽기도 한다. 그러다 책을 접고 걸으면서는 밑줄 친 문장을 곰곰 되씹거나 다른 궁리도 해 보는 것인데 이건 꿩 먹고 알 먹고 가 아닐 수 없다. 내 다리가 튼튼해지는 동안 내 영혼은 책 속 현자들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도 하니까. 물론 틱낫한 스님은 말했다.
“머리로 걷지 말고 발로 걸어라. 머리로 걸으면 길을 잃으리.”
밥 먹을 땐 오직 밥을 먹고 똥 눌 땐 똥만 눠라. ‘지금’에 오롯이 있을 뿐 딴 망상 피우지 말라는 말씀이다. 나는 스님께 합장하고 절한다. 달리 수가 있을까? 내가 책 들고 산책하기를 즐긴다고 해서 그런 마땅한 말씀에 뭐라고 토를 단다면 나는 진짜 길을 잃고 말 것이다.
며칠 전, 아침 산책을 하기 위해 버릇대로 책을 한 권 챙겨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였다.
“그건 무슨 책입니까?”
이렇게 말을 건 사람은 우리 아파트를 돌며 막힌 데나 누수 부분을 찾아 수리를 해 주고 먹고 사는 노인 수리공이었다. 그건 무슨 책입니까. 한 아파트에서 20년 가까이 살아왔지만 내가 들고 있는 책에 관심을 갖고 물어준 이는 그가 처음이었다.
“플라톤이네요?”
그새 책 표지를 슬쩍 엿본 모양으로 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그가 던진 말이었다. 그랬다. 그날 내가 가지고 나간 책은 플라톤의《향연》. 에로스-사랑에 대해 저 그리스의 아름다운 철인들이 나눈 재미있고도 진지한 논담들이 담긴 책. 플라톤이란 이름이 늙은 수리공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나는 좀 어벙해져서 아, 예, 무심히 짧게 대답했고 그 사이 엘리베이터는 1층에 당도했다. 우리는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왔다.
나는 수년 전 우리 집 개수대의 배수구가 막혀 그 노인을 부른 적이 있었다. 그의 진단인즉슨, 고치기가 좀 어렵다, 콘크리트 벽을 뚫어야 한다, 공사비는 300만 원쯤 든다, 였다. 사태 파악이 나보단 빠른 아내가 일단 그를 돌려보낸 다음 전화로 다른 젊은 수리공을 부른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노인에겐 없던 신형 장비를 챙겨 온 새 수리공은 10여 분 만에 문제를 해결했고 수리비는 15만 원이었다. 우린 깜빡 속을 뻔한 것이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저 영감 실력 없다고, 터무니없는 공사를 벌여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람이라고 소문을 내고 싶진 않네요.’ 하는 아내의 말에 나도 ‘그 영감도 먹고살아야지.’ 맞장구를 쳤었다. 그 후로도 그가 우리 아파트에서 공사를 벌이는 건 내 눈에도 가끔 띄었는데 그날도 영감은 우리 라인의 어떤 층에 수리 일을 하러 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무튼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온 나는 산 쪽으로 그는 반대방향으로, 서로 헤어져야 했는데, 영감에겐 내게 한 마디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플라톤은 공산주의자 아닙니까.”
엉? 몰라서 묻는 게 아니었다. 내 머리는 플라톤의 이상 국가에 대해 알고 있는 몇 가지 지식 나부랭이들이 떠오르면서 잠시 좀 복잡해졌다. 말을 섞고 싶진 않았지만 나도 내쳐 한 마디를 했다.
“그럼 예수나 부처도 공산주의자지요.”
“그야……. 아니오. 예수는 부처하고는 다릅니다. 한 번 물어봅시다. 부처가 신입니까?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영적으로 다릅니다. 영적인 차원이란 게 있어요. 나도 이런 공부 20년, 30년 했어요.”
영감은 돌연 열정적이 되었다. 이크. 이럴 때는 피하는 게 상수. 잠시 후 나는 산으로 난 임도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나 홀로 산책과 독서를 누군가가 방해하도록 신이 예정이라도 해 놓았던 모양이다. 성불사라는 절 아래 공터에 차려진, 길거리 커피와 아이스케이크를 파는 포장마차를 지나는데 나를 부르는 이가 있었다. 그는 한 방송사에서 명퇴를 한 지가 20년이 되었다는 70대 노인으로 거의 매일 거기까지 올라와 동네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소일하는 호인풍의 사내였다. 우산 모양의 차양막이 쳐진 테이블에 책을 올려놓고서 간이 플라스틱 의자에 앉자 그는 천 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자기가 산다며 내게 권하기부터 했다. 그런 다음 우리와는 5m가량 떨어져 앉아 있는 한 노인을, 그가 들으라는 듯, 간접화법 비슷하게 내게 소개를 했다.
“저기 저분은 말이에요. T밴드 회사 사장님을 했어요. 대단한 분이에요.”
“아, 네.”
“저기, 요즘은 무슨 책을 봅니까?”
“아, 뭐…….”
“나도 영광도서에 자주 가는데요, 나야, 전문기술책, 화학, 생물 이런 걸 주로 보지만 말입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가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꺼내는 터라 나도 맞장구 겸해서 며칠 전 막을 내린 의사들 파업 얘기를 꺼낸 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을까?
"내가 아는 한 수간호사 말이, 자기가 근무하는 병원의 의사는 한 달 월급이 5천 만원인데 간호조무사들은 시급도 안 되는 180만원을 받는다 하더군요."
방송사 출신 노인에게 한 말이었는데 이 말에 귀가 번쩍, 한 것은 저만치의 사장 출신 영감이었다.
“아니, 좋은 머리에 밤잠 안 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의대에 들어가서는 또 10년 이상을 뼈 빠지게 고생하고도 좋은 대우를 못 받으면 누가 의사 하겠소?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나라 아니오? 길에 돈 100만 원이 떨어져 있다 칩시다. 그걸 능력껏 먼저 차지하는 거, 그게 자본주의란 거요.”
누가 뭐랬나.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거기에 관한 한 난 아무런 말도 안 했다. 그로선 그게 더 미심쩍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아파트 현관에서는 공산주의 전문 영감님이 나를 걸고넘어지더니 여기서는 자본주의 전문 영감님이 ‘네 정체는 뭐냐’ 며 심문을 한 셈이었다.
‘누군가 요제프 K를 모함했음에 틀림없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어느 날 아침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송>은 이렇게 시작한다. 생각건대 그날 아침 산책길의 나도 카프카의 요제프 K처럼 모종의 체포를 당한 꼴은 아닌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를 ‘그냥 무심히 내 길을 가고 있을 뿐인데’로 바꿔 놓고 보면 내게도 그런 ‘체포’ 내지 체포 시도는 한두 번이 아닌 것이다.
‘도에 관심이 있습니까?’ 길거리에서의 이런 체포 시도야 그저 시시하다고 해 두자. 그건 도가 아니라 돈에만 관심 있는 사람들의 사기라는 게 너무도 빤해 보이니까. 하지만 일전에 지하철에서 만난 그 걸인은 누구였나? 덩치가 키 큰 장군 같은, 나보단 훨씬 젊은 사내였는데, 앉아 있는 나를 선 채로 노려보듯 살펴보더니 하는 말이 (내 옆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는 그 사내의 눈길이 무서워 다른 자리로 피해버렸다) “나, 나쁜 사람 아입니더. 천 원만 주이소.”였다. “배가 고픈 거로군,” 하며 내가 지갑을 꺼내자 그는 또 말했다.
“이천 원만.”
손가락 두 개를 브이 자로 살짝 펴 보이기까지 했다. 순간 나는 그 덩치에 재롱을 피우는 듯한 꼴이 마땅찮았다. “천 원이라 했잖아요, 자.” “고맙십니더, 고맙십니더.” 그가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막 열린 객차 문 밖으로 멀어지고 난 다음에야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런 바보 같은! '배가 고픈 거로군' 했으면 국밥 한 그릇 값은 줬어야지! 천 원으론 삼각 김밥도 못 사 먹는데……!
내일이면 나는 어떤 심문자를 만나 어떤 심문을 받게 될런지? 지금까지 받은 심문만 해도 나는 벅차다.
‘당신, 공산주의자요 자본주의자요?’
‘도를 아십니까?’
‘그냥 이천 원만 좀 줄 수 없겠습니까?’
생각해 보니 이 셋 중 내가 가장 답하기 어려운 것은 세 번째다. 이것에 관한 한 나의 무죄를 입증할 알라바이를 찾기란 정말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토록 비극적인 종말을 맞아야 했던 요제프 K의 유일한 죄는 자신의 잘못이 무언지를 끝내 알지 못한 데 있었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