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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형 Jun 08. 2020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

'과학처럼 보편적인 것이 된’ 오늘의 전쟁 범죄와  멕베스의 '죄와 벌'

아이들이 가끔 던지는 명쾌하고도 당돌한 질문은 어른들을 당혹케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가 느닷없이 콘돔이 뭐냐고 묻는 정도야 애교에 속한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두 동강낸 무처럼 보여 달라고 할 때면 사정이 달라진다.


 ‘부시와 후세인 중에서 누가 더 나쁜가?’, ‘파병은 옳은가 그른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왜 이슬람교도와 기독교인들은 화해할 수 없는가? 역사는 발전하는가? 정의는 끝내 승리하는가?’ 식으로 질문이 이어지면 나는 그만 도망치고 싶어진다. 개인이든 국가든 그들의 ‘이익’ 앞에서는 그 어떤 인간적 가치나 도덕성도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마키아벨리적 현실만 새삼 절벽으로 다가서는 것이다. 


우선 입시 ‘경쟁’이 애 어른에게 할 것 없이 피치 못할 ‘전쟁’이 된 지 오래인 마당이다. 대량 살상을 가져오는 전쟁과 아이들의 한시적인 입시 경쟁을 단순 비교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 안의 이기심이 은연중 전쟁을 용인하고 나아가 전쟁의 숨은 주범이 되고 만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히틀러의 광기도 그랬거니와 지금 부시의 폭력 또한 그를 지지하는 미국인들의 내면적 폭력의 총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타인에 대한 폭력에 기초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어제 저녁, 우리 가족이 따뜻한 밥상 앞에 둘러앉아 평화를 얘기하던 그 시각에도 이라크 어린이들은 공포 속에서 피 흘리며 죽어갔으니…! ( 그래서 성철 스님은 마지막 가는 길의 게송에서 ‘내 죄가 수미산을 덮는다’고 ‘고백’하지 않았을까? ) 


우리에게 절실한 반전․평화 교육은 우리 안의 폭력, 우리가 가담해 있는 유형 무형의 구조적 폭력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해야 하는 까닭은 우리네 삶의 부조리성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일찍이 까뮈가 갈파했듯이 ‘예전에는 절규처럼 외롭던 범죄가 이제는 과학처럼 보편적인 것이 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선과 악을 분명히 갈라 보여 달라는 아이들의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기란 애초에 틀린 일이 되고 만다. 


최근 발발한 미․영 연합군의 이라크 침략 전쟁은 전무후무한 반인륜적 범죄행위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전쟁을 결행한 ‘제국’의 최고 권력자들이나 그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전혀 범죄로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 아닐까? 이는 정녕 ‘하나님이 보시기에’ 타락의 극치라 할 수 있으리라.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진짜 죄는 살인을 ‘죄’로 인정하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데에 있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아직 영악한 현대인은 아니었다. 그는 죄를 짓자마자 내면의 판관에 의해 벌을 받는다. 노파를 죽이기 전에는 그토록 논리정연하고 명분이 분명했던 그 범죄도 막상 저질러지자 양심이라는 복병과 맞닥뜨리게 되었던 것이다.  


 또 다른 살인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어떠한가? 그는 왕위 찬탈을 위해 던컨 왕을 죽인다. 그런데 전쟁 영웅인 맹장 맥베스도 자신의 욕심 때문에 한 사람을 몰래 죽이는 일엔 익숙치가  않았던 모양이다. 심약하게도 그는, 살해 현장을 빠져 나오자마자 피묻은 두 손과 단검을 아내에게 내보이며 소리친다. 


“누군가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 ‘이젠 영영 잠들지 못한다!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


 정의와 해방의 이름으로 학살을 정당화하고 전쟁을 컴퓨터 게임인 양 여기는 부시를 비롯한 제국의 권력자들을 생각하면, 살인이 당장 부메랑으로 돌아와 죽기 전엔 더 이상 편히 잠들 수가 없게 된 맥베스의 영혼은 차라리 소박하고 진지하다. 벌을 달게 받은 라스콜리니코프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오늘은 중학교 1학년인 딸이 물었다. 

 “아빠, 북한과 미국이 전쟁을 하면 아빤 누구 편이 되어 싸울 거야?”

 끔찍한 질문!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 편이 되어도 내 잠은 살해당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만 뇌어볼 뿐이었다.

‘꼭 싸워야 한다면 평화의 편에 서서 싸우는 거야!’ 

하지만 그 방법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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