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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Sep 01. 2019

카사블랑카, 로망은 없고 색은 있다

모로코 2월, 사하라 사막을 걷다


미로迷路처럼 얽힌 리아드에서

겨울밤 찬 이슬을 피하고

핫산모스크에 다가서는 순간,

카사블랑카 해안의 첫 아침이 열린다.

대서양 파도를 타고 온 하얀 포말은

해안가 모스크를 에워싸며 몰려와 부서지고,

전장戰場으로 나가는 씩씩한 용사처럼

승리를 다짐하듯 거친 숨을 몰아쉰다.



대서양의 거친 파도 앞에 세워진 핫산모스크


다듬어지지 않은 골목길,

메디나에 사는 젤라바를 걸친

마라케시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열정,

조잘거리는 아이들의 신난 표정,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오토바이,

적당히 낡은 자동차 행렬...



마라케시 광장을 중심으로 재래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이방인은 낯선 이국에 대한

긴장의 끈을 붙들고 두리번거리며

눈앞에 펼쳐지는 소리와

향기와 화려한 색, 빛의 편린片鱗들을

기억 창고에 차곡차곡 저장한다.



건조한 기후라는 이미지와 달리 화려한 색조, 다양한 디자인에 푹 빠져 마라케시 시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가는 동안

멀리서 바라본 산정에 쌓인 눈,

설산의 때 묻지 않은 거친 바람과

오래된 기억 속에 밀봉되어 있던

눈이 시리도록 푸르던

고향 하늘이 거기에 있었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으며 멀리 설산을 바라보다



에잇벤하두의 강줄기를 따라가서

카스바 성채에 오르면

시선을 길게 잡아 두려는 듯

간헐적으로 형성된 오아시스 촌락들,

질녘 무언의 성채 그림자가

황량하게 메마른 대지 위에

가만히 눕는다.



에잇벤하두, 사하라가 시작되는 카스바 성채 중턱에 화방이 있다


광할하게 펼쳐진 사하라 사막언덕에 올라

황혼의 노을을 바라보다

어둠이 내려앉은 사구 골짜기에서

낙타는 휴식에 들어간다.


사하라의 아득한 무작위적 곡선,

그 위로 장엄하게 펼쳐지는 우주의 향연,

총총히 빛나는 별빛들을 무대로

둥둥거리는 경쾌한 북소리

들썩이는 리듬에 맞춘 몸부림,

그나와 음악과 베르베르 음악을 듣자마자

가슴은 순식간에 매료되어 버린다.

그렇게 이국異國의 밤은 무르익고...



낙타는 사막에서 좋은 이동수단이다. 그나와 음악의 리듬으로 신나게 어울린 사하라의 밤


사막에서 맞이하는 눈부신 일출,

새벽을 털고 일어나는 낙타의 기상나팔

이방인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천막 밖 차가운 공기를 온몸으로 빨아들여

폐부에 가득히 채워가는 동안

고요한 침묵을 즐긴다



사하라는 쏟아지는 별빛과 청명한 새벽의 일출을 선사했다


고도古都 페의 구도심에 자리한

터너리 염색공장의 가죽은 물론

은세공, 도자기, 카펫 등을 다루는

장인들의 삶 속에 한걸음 더 들어가

시공時空을 함께 한 인연들과  

화려한 마로코 문양에

온통으로 마음을 빼앗긴다.



페스에서 장인들을 만나던 날


쉐프샤우엔의 산자락을 따라

지중해를 닮은 푸른 물결의

메디나 언덕을 바라보면,

까닭 모를 그리움이 밀려들어

하릴없이 온 골목길을

오르락내리락 기웃거리며 누빈다.



쉐프샤우엔 언덕을 거닐 때도 마라케시에서 장만한 젤라바는 참 따뜻했고 여행중 즐거움을 배가했다


오밀하게 마련된 공간에  앉아

바이올린과 비올라들의 하모니로

안달루시아 음악을 들으며 만찬을 즐길 때,

허물어진 오래된 고성古城은

와온臥溫의 붉은 저녁노을처럼

깊어 가는 밤의 불빛을 받아

진한 황톳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안달루시아의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우아한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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