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입구에는 수령이 칠백 년 넘은 느티나무와 사백 년을 훌쩍 넘은 당산나무가 변함없이 마을을 지키며여름날 오가는길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곤 하였다. 어느 해인가 태풍으로 느티나무가 쓰러졌는데, 그느티나무와 나란히 서 있던 정자 옆을지나아버지와 식솔들은 봄날의 따스한 햇볕을 가득 안고 천천히 선영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난 초겨울,다른 태풍에 쓰러져 그루터기만 남은당산나무가 서 있던길가에어머니의행렬이잠시 멈춰 섰다.당신이 꽃가마 타고 임을 따라 들어왔던 오래된 마을, 젊은 날의 청춘을 바쁘게 보낸 대지위의 적요한 마을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나어릴 적에 수액을 빨려고 몰려든 풍뎅이 잡으려 오르내리며 놀던 당산나무에 대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초등학교 일 학년 때쯤이었을까. 이유를 알 수 없는 하찮은(?) 일로 발목만큼 눈 쌓인 당산나무 아래를떼굴떼굴뒹굴며 어머니를 너무나도 속상하게 만들었던 날이여.그나마 이제는바래버린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
언제 찾아가더라도든든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을 것 같던 느티나무와 당산나무가 사라지고,자식들의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 앉아도여전히 자식 걱정을 먼저 하시던 부모님을 이제 다시 뵐 수 없음에마음이 스산해진다.하지만시간은 슬픔도 마비시키는 것일까. 이제 슬퍼하고만 있지 않음은 어느 훗날에깃털처럼 가벼운 영혼으로 재회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늘은 다만순간의 이별을 아쉬워한다. 김여사님, 어머니!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