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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바우 Dec 07. 2019

그중에 그대를 만나

#이선희, 네 편의 사랑이야기


오후 일정에 순천만 국제습지센터 영상관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 <'불편'하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은 이야기들> 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관련법이나 제도, 성性 평등 관점에서 능력 향상 교육이 세 시간에 걸쳐 실시되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찬바람을 맞으며 장소를 이동한 탓인지 강연장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식곤증이 몰려온 탓에 수강하는 이들이 모두 꾸벅꾸벅 묵언수행(?)에 들어간다. 

신체가 불편한 이들의 호칭이 장애자 - 장애우 - 장애인으로 변천해가는 과정과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후천적 사고 등으로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유능한 강사는 졸고 있는 수강생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려는 듯 뮤직비디오를 하나 틀어 주겠단다.


인생의 노트에 어떤 사랑을 기록할 것인가?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 장애인이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것은 첫 번째 사례일 것이라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졸린 눈을 비비며 영상을 지켜보았다.




이선희의 가창력은 이미 만인이 인정하는 바이고, 그녀가 열창하는 음악을 배경으로 할아버지가 강아지(래브라도 리트리버=사랑이) 한 마리를 구해와 시각장애인의 가슴에 안겨준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가 되었다. 사랑이가 성장하며 장애인의 눈을 대신하는 반려견으로 살아가는데 어느날 동네 꼬마들과 어울려 놀던 사랑이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장애인은 슬픔에 싸여 사랑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맨다.


사랑이 :  솔바우가 작명한 강아지 이름.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 바란 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음악이 계속 흐르는 가운데 이번에는 한때 사랑을 속삭이던 젊은 연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여자는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그리하여 한동안 상처를 안고 가슴앓이를 하는 남자...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 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 건 기적이었음을"


장면이 바뀌어 한평생 고락을 같이 해온 노부부가 나타난다. 어느 날부터인가 할머니의 잔소리가 부쩍 늘면서 평소 할머니가 전담했던 집안일을 할아버지에게 가르치려고 한다. 할멈은 왜 이리도 서두르는 것일까. 밥하기, 빨래하기 등 제대로 못한다고 구박하며 이것저것 자꾸 시키는가 하면, 담배도 좀 적당히 피우라 성화를 내도 할아버지는 그저 조용히 따를 뿐이다.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중에 하나 되고
오~ 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 있었다면"


이어지는 장면은 젊은 남편이 암투병 중인데, 아내는 극진한 정성으로 간호를 하고 있다.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오르지 병 수발에 전념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지경이다. 병실에서 쪽잠을 자는 아내, 항암치료 과정에 벗어진 머리그것을 가리려고 모자를 쓴 초취해진 모습. 그 현실 남편은 너무도 괴다. 견디다 못한 남편은 결국 병실을 박차고 빠져나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 버린다. 사라져 버린 남편을 야속해할 사이도 없이 아내는 슬픔을 머금고 자신의 긴 머리를 싹둑 자른다.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 있었다면"





... 시간이 지나고,

슬픔에 잠겨 있는 장애인에게 반려견 사랑이가 되돌아왔다. 분신 같은 존재여, 이젠 결코 헤어지지 말아야지...


젊은 연인은 헤진 후에 길을 가다가 옛사랑과 조우한다. 남자는 그 사이 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있다. 서로를 알아보지만, 서로 눈길을 주고받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사랑했던 한 때의 시간을 회상하며 스쳐간다. 그들에게는 거기까지 인연이었음을...


할머니가 떠나셨다. 막무가내로 화를 내며 가사를 챙기고 건강을 돌보라고 역정을 냈던 이유, 자신이 떠난 후 홀로 남을 반려자의 삶을 생각하며 먼저 떠나가는 이의 염려였다. 랑한다는 표현이 굳이 필요할까.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한들, 그 안에 배려와 인내가 없다면 그 얼마나 무의미한 메아리가 될 것인가.


어느 섬인지, 젊은 남편은 핼쑥한 모습으로 무심한 듯 바다를 바라본다. 이곳에 아내가 남편 앞에 나타났다. 남편과 같은, 잘린 머리에 모자를 눌러쓴, 똑같은 모습으로






4분 40초짜의 짧은 뮤직비디오였지만, 이후 강연은 한마디도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120분짜리 영화 한 편, 혹은 책 한 권을 읽고 난 후보다  울림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다. 어떤 사물이든지 그것이 갖는 의미는, 그 의미를 부여한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 이선희 /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노래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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