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생각해보면 의욕이 넘치는 이십 대 학창 시절을 십년 가까이 남의 나라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았었다. 귀국후에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하던 일들을 모두 정리하고 연고도 없는 어느 지방의 소도시로 내려가겠다는 말을 들은 주변 몇몇 지인들은 얼마 못 가서 도회지로 다시 돌아오리라고 한결같이 생각했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오랫동안 익숙해진 도시의 절제되고 안전한 거리 유지를 필요로 하는 그 공간을 벗어남에 대한 염려와 우려보다는 온전하지 않더라도 자연의 섭리를 따라 느낌 닿는 대로 살아가는 영혼의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이 컸던 것일까. 우리 부부는 다른 부분에서는 생각하는 바가 상당히 달라서 맞추기 힘들 지경이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묘하게도 같았다. 내가 새로운 분야로 직업전환을 할 기회가 옴에 따라, 주말 가족으로 지내다가 결국 일 년쯤 뒤에는 아예 남쪽에 터전을 마련하였다. 교직에 있던 아내의 지방 전근의 배경에는 사실 연년생 아이들의 성장과정에 엄마가 혼자 감당키 어려운 부분을 해소하려는 요인도 크게 작용했지만 결과적으로 신속한 결정을 촉진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사계절의 변화하는 자연을 유심히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마음의 여유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되나 다행히 그 점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의 생각이 동일선상에 있었다.
그것을 대변하듯 주말마다 거의 빠짐없이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겼다. 봄날은 매화, 산수유화, 벚꽃, 배나무 꽃길을 달렸고 여름에는 뜨겁게 달구어진 섬진강변 백사장을 맨발로 걸었다. 가끔은 포도밭에서 갓따낸 포도를 두어 박스씩 차 트렁크에 싣고 귀가하거나 가을로 접어들면 단골 배나무집에서 들려 단물이 뚝뚝 떨어지는 햇배를 깎아먹으며 즐거워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자꾸 바뀌고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아내는 같은 시내권에 있는 학교나 인근 지역의 학교로 일정기간이 지나면 옮겨 다녀야 했다. 누구나 근무환경이 나은 지역에 오래 머무르려고 하니 가능하면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하려고 이러한 발령이 제도화된 것이었다. 특히 남도에는 섬들이 많다 보니 도서島嶼 근무 점수가 추가되는 모양이었지만 아내는 애초부터 승진은 염두에 두지 않은 터라 그저 현재의 공간에서 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집에서 매일 차로 운전시간만 삼십여분 거리의 작은 시골학교로 통근하는 아내가 지난해부터 피곤을 핑계 삼아 수요일쯤에는 나더러 학교의 비어있는 관사로 퇴근하면 어떠냐고 의견을 묻는다(거의 압력에 가까웠지만). 생각해보면 자동차로 왕복 한 시간의 거리는 대도시에서 느끼는 시간적 거리감과는 꽤 차이가 있다. 그래서 출장이 없는 날은 관사로 퇴근하는데 내가 한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아내는 그 시간 이상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셈이다. 섬진강 가까이에 있는 학교의 창가에 서서 강변을 바라보면 시절 따라 꽃이 피고 나뭇잎 새싹이 자라는 과정을 고스란히 동공에 담을 수 있다.
관사에 머무는 여름날은 저녁식사를 일찌감치 마치고 초저녁 하늘을 올려다보며 가벼운 옷차림으로 섬진강 둑을 따라 걷노라면 강물 흐르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아이들은 외지에 있는 학교로 모두 떠나가서 문득 자각해보니 혼자가 둘이 되고, 서넛이 되었다가 어느새 다시 둘만 남아 있다는 사실에 시간의 무상함을 서로 감추지 않는다. 아내가 면 단위 학교에서 근무하는 것은 두 번째인데, 그때마다 관사를 얻어 들어갔다. 그곳에 머무는 것은 수요일 정도이지만, 공동주택의 고층에서 생활할 때는 전혀 느낄 수가 없는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땅기운이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관사에서 머무는 날은 땅거미가 질 무렵 새들이 둥지를 찾아 깃드는 푸드덕거림 소리, 밤새 들려오는 온갖 벌레들과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밤하늘에 울려 퍼진다. 평소 늦게 잠자리에 드는 나지만, 밤 열시만 되어도 졸음이 몰려오고 이른 새벽녘 산새들의 청아한 지저귐으로 눈을 뜨게 된다. 강가에서 불어오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길에 보면 강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에 갇히어 거북이걸음을 할 때도 더러 있다. 브런치의 매거진 <싸목싸목 걷는 길>에 올린 ‘구름 위에 올라’는 그러한 분위기를 옮겨본 것이다.
아내는 이제 이 사랑스러운 공간을 떠나려고 한다. 아직은 근무할 수 있는 시간들이 꽤 남아 있지만, 의욕이 넘치는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어쩌면 올해를 끝으로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그 길을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부터 입버릇처럼 그래 왔지만, 이제는 정말 그럴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연들을 안고 살아왔을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가끔씩 어려움을 하소연하는 말을 들으면서 나 같으면 이미 몇 번이나 접었을 법하지만, 수 없이 인내하면서 지내왔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다. 그동안 정말 수고했어요. O여사, O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