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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

by 솔바우



이정표도 없는 산길의 작은 암자에 올라가
운신의 좌표를 그려보고 싶을 때
흑백의 세계가 동경이 되어 뭉클해졌다.

숲 속 고요를 품은 송연(松煙)을 조심히 갈아놓고
새로 스쳐갈 소중한 인연의 기다림으로
담백한 만남을 떠올리며 눈을 감는다.

한 획의 흔들림이 두려워 호흡이 멎고
초심의 한 자를 옮김이 태산보다 무거워라.

어느덧 공간은 묵향으로 채워지고
우주의 명멸하는 별빛 속에서 전설의 위인이 다가와
귓가에 소곤거리는 명언들이
약속한 여백을 남기고 제자리에 앉는다.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바람처럼 존재를 인식함으로
세상 시간 위로 소망하는 사유들을 잊게 한다.

잎사귀를 떨궈낸 겨울 나뭇가지 흔들리듯
붓끝에 걸린 가는 떨림이 문득 통쾌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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