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빠의 위로
# 아빠의 위로
우리아빠는 참 무뚝뚝했다.
속은 자상한데 겉만 무뚝뚝한 그런 경상도 아빠가 아니라
속도 겉도 참 딱딱해 딸이 힘든 고3 수험생활을 보내는데도 스쳐가는 응원 한마디조차 해주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 화이트데이에 같은 반 친구들은 아빠한테 사탕을 받았다고 자랑을 했고
아빠에게 노골적으로 "아빠! 다른 애들은 아빠가 사탕도 사 온대~ 아빠도 사와"라고 말했어도
단 한 번도 아빠의 손엔 사탕이 붙들려 있었던 적이 없다.
아빠는 그저 나에게 돈 버는 기계였다.
이 말을 아빠에게 직접 내뱉을 정도로 심한 말도 서슴지 않았으며
아빠가 먼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렸던 맘에 아빠와 몇 달간 말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엄마와 아빠 험담을 아빠 앞에서 대놓고 하다가 아빠가 "아빠 마음대로 갖고 놀다가 제자리에만 잘 갖다 놓으라"라고 할 정도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타지로 오면서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이 기대되기도 했지만 많은 것이 낯설고 어렵고 두려웠다.
타지 생활을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절대 하지 않았던 안부전화였다.
잘 지내는지, 밥은 먹었는지 묻는 아빠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왈칵 마음이 쏟아져내렸다.
그리곤 이내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도 전, 아빠는 퇴근길에 항상 우리를 위해 크고 작은 장난감을 사 왔다.
동생과 나는 아빠가 사 온 장난감들을 가지고 마당을 뛰어다니기도 때론 다투기도 하며 신나게 놀았다.
이후, 짐만 된다는 엄마의 핀잔에 장난감이 끊기고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한 무더기의 쓰레기로 변하기까지
나와 동생은 작은 집 현관문 앞에 앉아 아빠의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내게도 아빠의 퇴근시간이 기다려지는 시간이 있었다.
아빠는 우리에게 어떤 장난감이 갖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물어볼 정도로 다정하진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혼자 동네 슈퍼에서 장난감을 고르시며 얼마나 고심했을까.
크면서 잠시 잊고 살았다.
우리아빠만큼 자상한 아빠도 없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