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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르는 그들이 나를 안다.

by 베존더스

매주 금요일 첫째 듬직이는 ‘다운천사’ 동생을 데리러 따라나선다. 사춘기라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지만

‘다운천사’ 동생에게만큼은 활짝 연다. 말수가 적은 아들과 동행할 때면 난 수다쟁이가 된다. “학교에 00을 데리러 가면 키 큰 오빠가 자신의 친오빠라고 우쭐대는 게 귀여워 그렇지? 오늘도 안아달라고 하겠지?”라면 듬직이는 웃음으로 대답한다. 차에서 내려 정문으로 향했다. 무뚝뚝한 듬직이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동생을 먼저 만나려 성큼성큼 앞서갔다.


‘다운천사’ 딸이 선생님 손을 잡고 교실에서 나왔다.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는 딸은 울음을 터뜨렸다. 목 놓아 우는 울음소리에 섞여 나오는 ‘아빠’라는 단어가 들렸다. ‘멀리서 보니 첫째 오빠 모습이 아빠처럼 보였나? 아빠가 아닌 오빠 모습에 서운했나?’ 말을 잘못하는 딸이기에 짐작할 뿐이었다. 듬직이는 동생을 안아 올리며 귓가에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라며 차까지 안고 갔다.


학교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슈퍼마켓이 있다. 딸을 학교에 보내고 종종 가는 슈퍼마켓 주차장은 작았다. 후진 카메라의 도움을 받아도 주차는 어려웠다. 듬직이는 차에서 내려 차가 오는지 살폈다. 듬직이의 손짓에 따라 주차했다. 카트를 끌고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듬직이에게 말을 걸었다. “가끔 엄마를 봤는데 전에도 주차 못해서 쩔쩔매더니 여전히 그러고 있네”라며 호탕하게 웃으며 지나갔다. 농담인 걸 아는 듬직이는 미소로 답했다. '난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동양 여자라 눈에 띄었나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슈퍼로 들어갔다.


듬직이는 카트에 ‘다운천사’ 동생을 태우고 아이스크림을 고르러 갔다. 아이스크림을 담아 오는 듬직이는. “엄마, 00 이가 모르는 아줌마 가방을 잡아당겨서 말리는데 그 아줌마는 학교에서 일한다고 00을 잘 안데.” “그래? 학교 근처니 만날 수 있지.”라며 등을 돌리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듬직이가 말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00가 태어나고 돌봐주던 간호사예요. 지금은 학교에서 일해요. 00가 다섯 살 때 사진을 봤어요. 그때 그 모습을 보고 학교에 입학한 00을 알아볼 수 있었어요.”라며 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운천사’ 딸과의 인연이 있는 사람은 내가 모를 리가 없었다. 딸로 맺어진 인연은 소중하기에 지금까지 연락한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딸을 낳을 당시 ‘다운증후군’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 소견에 정신이 없었다. 머릿속이 바쁘게 움직였다 ‘대체 누굴까?’ 기억이 나지 않는 당혹감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어색하게 인사하며 헤어졌다. 문득 지인 얼굴이 떠올랐다. ‘다운천사’ 딸이 태어나서 다섯 살까지 연락했던 ‘다운천사’ 선배 맘이었다. 오늘 만난 그 사람과 연관성이 없었다. 딸의 다섯 살 때 사진을 가지고 있는 지인은 선배맘뿐인데. 선배 맘도 간호 사니깐 혹시 서로 알 수도 있겠단 생각에 선배 맘에게 문자를 보냈다.


‘정말 오랜만이에요. 2년 만의 연락이네요. 잘 지내고 있어요? 혹시 우리 슈퍼마켓에서 만났나요? 제가 못 알아본 건가 싶어서요.’ ‘잘 지내고 있어요. 슈퍼에서 만난 사람은 제 친한 친구예요. 아까 친구가 만났다고 연락이 왔어요. 00가 특수학교에 간다고 해서 학교서 만나면 잘해 주라고 친구에게 사진을 보여줬어요. 00의 엄마를 슈퍼마켓에서 만나서 반가웠나 봐요. 우리도 조만간에 만나요.’라는 문자를 받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특수학교마다 의료지원으로 간호사가 있다.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사가 특수학교로 왔을 줄이야. 제대로 된 인사를 하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다.


다운천사’ 딸을 낳았던 병원에서도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슈퍼마켓을 가더라도 까만 머리의 동양인은 눈에 띄었다. 나는 모르는 그들이 나를 알 수 있다. 한때는 동양인이라 눈에 띄는 게 싫었다. 지금은 케이팝, 오징어게임 등으로 한국이 알려졌지만 14년 전만 해도 동양인은 무조건 중국인으로 봤다. 간혹 무례한 독일인은 ‘니하오마’라며 실실 웃었다. 시대가 바뀌며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도 생기고, 한국 음식에 관심 있는 이들도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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