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도 봄이 왔다. 오후 4시면 온 세상이 캄캄해진다. 긴 겨울이 지나고 찾아온 봄은 반짝반짝 빛난다. 푸른 녹음을 준비하기 위해 새싹을 피우는 나무, 돌림 노래 하듯 이어지는 새소리가 들린다. 작은 정원에 꽃 몽우리는 아침 이슬을 머금고 고개를 떨군다. 오후가 되면 따스한 햇볕을 받아 활짝 웃는다. 분홍 벚꽃이 만개하는 시기가 오면 뒤뜰 초록색 잔디밭은 분홍색으로 물든다. 높다란 나무에 달린 그네를 흔들거리며 타는 딸 머리 위에 분홍 벚꽃 잎이 사뿐히 내려앉는다.
눈으로 보이는 봄은 설레고 아름답다. 피부로 느껴지는 봄은 괴롭다. 눈이 간지러워서 비비면 빨갛게 부어오르고, 연달아 나오는 재채기에 가슴팍이 아프다. 콧물을 하도 풀다 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심한 날에는 목에서 피 맛이 느껴진다. 밤사이 가려움으로 비비던 눈에 딱풀 같은 눈 꼼으로 눈이 붙는다. 남편과 첫째 듬직이 역시 눈물 콧물을 쏟는다.
남편과 연애 시절 봄을 만끽하며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높다란 나무 밑에 앉아서는 연신 재채기를 해댔다. 봄볕에 활짝 핀 하얀 꽃은 가루를 퍼뜨려 우리 몸을 공격했다. 너도밤나무였다.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였다.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너도밤나무가 무서웠다. 첫째 듬직이 또한 우리의 알레르기를 물려받았다. 병원에 가서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통해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가 사는 집 뒤 뜰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너도밤나무가 우리를 조롱하듯 우뚝 서 있다. 다음 달이면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 간다. 이곳에서 괴로웠던 봄의 마지막이다. 해가 쨍쨍한 날이 계속된다. 소낙비가 시원하게 내려 꽃가루가 씻겨져 나가길 바란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버틴다. 하루가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