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지덕지 짜증이 묻는다.
4월 말이면 집 짓기가 끝난다더니 5월이 되어도 마무리는 되지 않는다. 집 짓는 공사가 멈춘 상태로 3주가 넘어간다. 건축 회사에서는 돈이 되는 큰 건에 일을 먼저 하다 보니 개인 하우스 짓는 일을 뒤로 미룬다. 무엇 하나 제대로 딱 맞게 되는 게 없다. 주문 제작해서 들인 대문에는 집 번호가 틀리게 기재되었다. 분명히 건축사에 확인한 사항이었다. 새 창문틀이 휘어져서 이미 컴플레인을 걸어둔 상황인데. 대문으로 또 컴플레인을 걸어야 한다. 집 지으며 벌써 몇 번째 컴플레인이지.
화장실에 세면대, 변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단 손잡이 작업도 전혀 되어있지 않다. 전기 마무리 공사도 멈추다 보니 벽지를 바르는 작업이 늦어진다. 벽지를 바르고 적어도 2주 후나 집에 들어갈 수 있다는데. 5월 안으로 새집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착착 돼도 모자란 시간에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우리와 같은 날에 집 짓기를 시작한 옆집은 어엿한 집의 모습을 갖춰간다. 대문도 정상적인 집 번호가 들어갔다. 독일어가 모국어인 독일 사람 집이라 일 처리가 정확하고 빠른 건가? 우린 외국인이라 호구로 보는 건가?
고슴도치가 되어 온 신경이 곤두선다. 소화 불량으로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소화제를 들이부어 먹어도 시원하게 트림이 나오질 않는다. 콜라를 단숨에 들이켜 보지만 목만 따가울 뿐이다. 5월 말에는 월셋집에서 나가야 한다. 집주인은 리모델링해야 한다며 언제 나갈 건지 물어본다. 바닥상태를 확인한다며 우리와 약속되지 않았는데 들이닥쳤다. 박스로 어질러진 집이 그대로 보여졌다. 다음 주 화요일에 집주인은 세입자를 데리고 방문한다고 한다. 박스로 가득한 집을 정리해야 할 일이 추가된다.
혼자 짐 싼다고 사투를 벌인 지도 3개월이다. 급한 성격에 5명의 짐을 2월서부터 쌌다. 4월 계절만 생각하고 여름옷을 다 쌌는데 5월에 27도가 웬 말인가. 여름옷 박스를 찾느라 쌓아둔 박스 사이를 헤집고 다닌다. 쌓아 올린 박스를 하나씩 내려 확인한다. 테이프가 단단히 붙은 박스를 뜯고 여름옷을 꺼낸다. 싸던 짐도 푸니 모든 걸 놓고 싶어진다.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본다. 햇볕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씨가 애석하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다시 박스 앞에 쪼그려 앉는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니 냉면 생각이 간절하다. 얼음이 동동 떠 있는 시원한 냉면 육수를 마시면 속이 뻥 뚫릴 것 같은데. 부엌에 들어가 뒤적뒤적 들쳐 보지만 인스턴트 냉면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인 마트까지는 차로 30분인데.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짜증이 온몸에 덕지덕지 묻는다. 아이들이 먹다 남은 초콜릿만이 눈에 들어온다. 초콜릿 한 조각을 무심히 입에 넣는다. 시선을 돌려보니 부엌도 엉망이다.
정리할 곳이 아직도 많음이 보인다. 마음속에 일렁이는 짜증은 거친 파도가 된다. 시원하게 세수라도 하자며 들어간 화장실에서 있는 힘껏 소리 지른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짜증의 파도가 아이들을 휩쓸 것 같다. 아직 학교에 있는 아이들이 돌아오기 전 마음을 다독인다. 시간이 되어 북적이며 아이들이 돌아온다. 고요하던 집은 이내 시끄러운 시장통이 된다.
평소와 다르게 멍한 표정의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 눈빛이 불안하다. 애써 웃어 보지만 어색한 웃음만 새어 나온다. 5월 어디 즘 이사 가겠지만 정확한 날짜를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너무 싫다. 이사라도 어서 빨리 가고 싶다. 정리되지 않은 머릿속의 실타래가 걷잡을 수없이 뒤엉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