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구멍은 그대로였다.

by 베존더스

다희는 심장 검사를 2주에 한 번씩 받았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다희를 안고 심장 전문 병원에 갔다. 태어나서 생긴 구멍은 저절로 없어지거나 작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 기간의 5개월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검사로 수술 여부가 결정된다. 긴장되는 마음에 함께 간 남편 손을 꽉 잡았다. 결국 심장의 구멍은 작아지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수술해야 합니다." 의사의 결정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수술만은 피하길 기도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그 작은 가슴에 칼을 대야 하는구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남편은 담담한 척 나를 안아주었다.


어른인 나도 부엌에서 요리하다 베이는 작은 상처에도 아픈데. 작은 아기 가슴에 5센티미터가량 칼자국을 내야 한다니 미칠 것 같았다. 심장 수술은 진료 다니는 병원에서 하는 게 아니었다. 구멍을 막는 수술이기에 다른 심장 전문 병원으로 가야 했다. 수술 날짜를 잡기 위한 절차가 복잡했다. 다희의 심장 초음파 검사 소견서가 수술받을 전문병원으로 전해졌다. 심장 전문의와 심장 수술 담당의가 전화로 다희의 상황을 의논했다. 수술 날짜가 나왔다.


수술하기 전 심장수술 담당의를 만났다. 수술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림으로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위험한 건 아닐까요? 100퍼센트 중에 나쁠 확률이 몇 퍼센트예요?" 내 질문에 담당의는 웃으며 "1퍼센트입니다." 그 말에도 나의 긴장은 늦춰지지 않았다. 담당의와 상담이 끝나고 다희의 혈액형 검사가 이루어졌다. 독일은 한국과 달리 태어나면서 혈액형을 알 수 없다. 수술 시 필요할 수도 있는 혈액을 위해 검사했다. 혈액 형은 의료진들만 알 수 있다.


수술 날짜가 잡히기 한 달 전부터 다희의 유아 세례 날짜가 잡혀있었다. 독일에 사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기도해온 지인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모두 다희의 수술 결정을 알고 있었다. 기뻐야 할 자리에 눈물이 났다. 다들 마음이 뭉클하고 울컥했다. 우리가 다니는 교회의 담임 목사님의 배려로 목사님인 친정아빠가 직접 세례를 해주었다. 친정 엄마는 애써 눈물을 삼켰다.


주일학교 언니, 오빠의 축하 노래와 준비한 꽃송이들이 하나씩 하나씩 다희의 작은 무릎 위에 쌓였다. 그중 두 아들도 있었다. 그 모습에 애써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다름의 모습으로 보내신 것도 마음 아픈데 수술까지 하게 하시는 이유가 뭘까? " 울며 기도 했다.


수술 전 날 피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를 위해 미리 입원했다. 다운증후군 아이 특성상 혈관 찾기가 어렵다. 또렷하지 않고 히미 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다희도 마찬 가지로 작은 발에 혈관 찾기가 어려웠다. 세 번의 시도 끝에 링거 바늘을 꼽았다. 한 번에 바늘 자리를 잡아주면 좋으련만. 통곡하는 다희를 아기 띠로 안아 달랬다. 혈관 찾아 바늘 넣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준비가 다 끝났다. 다음 날 수술만 하면 됐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병원 측의 실수로 다희의 자리가 없어졌다. 중환자 실에 있는 환자가 일반병실로 옮겨져야 하는데 일반병실에 자리가 없단다. 이렇게 되면 다희가 수술하고 들어가게 될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수술 날짜가 미뤄지고 퇴원을 해야 했다. 고생할 거 다하고 이제 와서 다시 집에 가라니. 처음부터 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화가 치밀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을 일주일을 우리는 긴장하며 초조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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