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디작은 아기의 심장 수술

by 베존더스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먹지도, 자지도 못 하며 긴장과 초조함 속에서 지냈다. 일주일 사이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일어나는 상상도 했다. 딸은 태어날 때부터 심장 좌우 양쪽 심실 사이 중간 벽에 구멍이 3개나 있었다. 딸이 태어나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다운 천사들의 모임에 다녔다. 그곳에서 만난 눈이 크고 맑은 다운 천사 아기가 있었다. 그 아기 엄마에게 "당신의 예쁜 딸은 심장 수술을 했나요? " "5개월이 되어 구멍이 자연스럽게 막혔어요." 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당신의 딸도 기다리다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요." 몇 달 후 우리에게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딸의 수술은 결정되었다.


수술을 위한 입원 수속을 다시 해야 했다. 원래 대로 수술을 했다면 피 말리는 일주일의 기다림도 없었다. 딸은 이미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일 것이다. 속상한 마음을 안고 입원 수속을 마쳤다. 일반 병실에 짐을 두었다. 진료실에서 딸의 혈관 찾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차마 볼 수 없어 남편에게 들어가라 했다. 딸의 우는소리는 귓가에 크게 들렸다. ‘제발 한 번에 찾아져라’ 주먹을 꼭 쥐고 기다렸다. 다행히 주삿바늘은 한 번에 꽂혔다. 피검사, 심장 박동 검사 등 모든 검사를 또 해야 했다.


수술 전에 이미 딸은 지쳤다. 집에 친정엄마와 함께 있는 두 아들을 위해 남편은 집으로 갔다. 독일이란 낯선 병실에서 남편 없이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국어로 들어도 어려운 의학용어를 독일어로 들으며 딸의 보호자로서 대처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됐다. 나의 염려와 달리 딸은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이 작은아이의 심장에 칼을 대야 한다니.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데. 난 왜 이렇게 약한 건지. 자책했다.


밤새 뒤척거렸지만 여지없이 아침은 찾아왔다. 일찍 남편이 왔다. 한 시간 후에 친정 아빠, 남동생도 왔다. 친정아빠가 수술 전 딸을 안고 기도해 주었다. 모두가 울컥한 감정이었지만 애써 참아냈다. 슬픔을 딸에게 전해주고 싶지 않았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되는 수술 준비를 위해 8시 20분쯤 간호사가 왔다. 수술을 위해 필요한 링거 기계가 여러 대였다. 수술 실로 내려가기 전 딸의 옷을 다 벗기고 기저귀만 채웠다. 작디작은 내 아기의 옷을 벗기는데 눈물로 눈앞이 흐렸다. 애써 눈물을 참아내는 내 눈과 마주친 딸의 눈에 내 슬픈 모습이 비쳤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밝은 모습으로 안정을 주고 싶었는데. 엄마의 슬픔을 느끼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기저귀만 찬 아기를 담요에 싸서 안고 수술실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려가는 동안의 시간이 더디게 느껴졌다. 차오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내 품에 안겨 아무것도 모르는 딸을 의사에게 안겨 주었다. 의사 품에 안겨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요게벳의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 너의 삶의 참 주인 너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 그 손에 너의 삶을 맡긴다' 애써 참고 있는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울 수 없었다.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본 친정 아빠의 뒷모습이 들썩였다. 난 더 아무렇지 않아야 했다.


기다리는 5시간 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작은 아기. 내 아기. 얼마나 아플까. 엄마 없는 차디찬 침대에 누워 있을 내 아기. 나오려는 눈물을 꿀꺽 삼켰다. 내가 울면 남편도 울기에, 참아내느라 어금니를 얼마나 물었는지 입안이 헐었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고요했다. 몇 시쯤 됐을까. 오후가 지나도록 의사는 나오지 않았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수술 끝났어요. 심장에 구멍이 3개가 아니라 5개였어요. 시간이 더 걸렸지만 수술이 잘 되었어요.” 그 말에 다리 힘이 풀려 남편 팔을 꽉 잡았다. 딸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바라만 봐야 했던 내 딸. 퉁퉁 부은 얼굴,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가슴에 커다란 붕대가 감겨있었다. 10개도 넘는 링거 바늘이 얼굴에 팔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괴로웠다. “3일 재울 거예요”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사랑하는 내 딸, 너무 장하고 씩씩하게 잘 견뎌줘서 고마워 그리고 많이 많이 사랑해 “ 목이 메어 말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병원에 남겨두고 집으로 와야 했다. 내 살을 떼어 놓고 온 것 같은 아픔에 차 안에서 울었다. 참았던 눈물을 토해내듯 미어지는 마음을 부여잡고 울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30분 걸렸다. 그 길을 울며 다녔다. 집에 있는 두 아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어서 차에서 울었다. 중환자실에서 회복하는 시간은 일주일이 걸렸다. 물 한 모금도 넘어가지 않았다. 집안은 엉망이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정리할 수 없었다. 잠도 잘 수 없었다. 딸을 만나러 가는 아침이 밝아오면 마음이 급했다. 빨리 보고 싶었다.


갈 때마다 달렸던 링거 주사가 하나씩 제거되는 걸 볼 수 있었다. 3일 내내 자는 아이를 서서 바라만 봤다. 수술 후 4일째 되는 날, 비로소 눈을 떴다. 간호사는 우유병으로 먹지 못해 코 줄을 통해 분유를 공급해 주고 있었다. 엄마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작은 눈동자에 나를 다 담아내려 했다. “이제 안아볼 수 있어요.” 간호사가 주렁주렁 달린 링거 줄을 정리해 주며 내 품에 안겨주었다. 딸의 온기에 울컥했다. 얼마나 안아보고 싶었던가. 면회 시간을 꽉 채워 안아 주었다. 시간이 다 되어 돌아서야 했지만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작은 온기를 혼자 두고 가야 한다니. 내가 가고 나면 천장만 바라볼 모습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내가 어미로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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