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생사를 오갈 때, 내겐 아무도 없었다.

by 베존더스

수술 후 7일째 되는 날이었다. “회복이 잘 되어 내일은 일반 병실로 옮길 거예요. 일반 병실에서 일주일만 더 있으면 됩니다.” 의사의 말에 기뻤다. 하루만 지나면 딸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날 집에 가는 길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이제 딸을 혼자 두고 집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당시 친정 부모님은 한 달 전부터 중요한 일이 있었다. 딸의 수술이 끝나고 3일 후부터 두 아들을 돌봐 줄 수 없었다. 친정 부모님이 안 계시는 동안 남동생이 시간 조율을 해 두 아들을 맡아 주었다. 일반병실로 옮겨지는 날 부득이하게 남동생도 일을 가야 했다.


결국 두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갔다. 먼저 남편이 일반 병실로 올라갔다. 난 두 아들과 병원 놀이터에서 기다렸다. 수술 병동이라 그런지 10살 미만의 아이들은 출입이 불가능했다. 잠시 후 남편이 내려왔다. 혼자 있을 딸이 걱정됐지만 두 아들을 일주일 동안 볼 수 없단 생각에 꼭 끌어안았다. 아직 어린 두 아들은 엄마 손길이 필요한데. 마음이 무거웠다. 인사를 나누고는 한달음에 딸에게 갔다.


딸은 호흡기를 빼고 자가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거칠고 고르지 않아 마음이 불안했다. 딸이 일반 병실로 옮겨지면 다 괜찮아지는 줄 알았다. 거친 숨소리는 점점 심해져 갔다. 급기야는 얼굴이 파랗게 되어 의사를 급하게 불렀고 달려온 의사는 기도 확장제를 투여했다. 응급상황이었다. 서서히 혈색이 돌아왔지만 여전히 숨쉬기가 어려웠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기 띠에 딸을 안고 “하나님 제발.”을 수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잠시나마 다희는 내 품에 안겨 잠들었다. 이렇게 쭉 잠잠해졌으면 바라고 또 바랐다. 나의 바람과 달리 또다시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아이가 건강해지라고 한 수술인데 이러다 아이를 하늘로 보내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불안하고 무서운 시간을 홀로 감당했다. 남편의 전화에 숨죽여 흐느꼈다. “이러다 딸을 보내야 하면 어떡해? 혼자 너무 무서워.” 남편은 애써 나를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계속 기도하고 있어.”


밤을 지새우며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히 기도했다. 딸의 숨소리가 안정되고 나서야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사실 00가 숨을 못 쉬어서 응급상황을 여러 번 겪었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엄마, 아빠는 열 일 제치고 5시간 밤길을 운전해 와 주었다.


난 사는 동안 언제나 누군가를 의지했다. 결혼 전에는 부모님을, 결혼해서는 남편을. 홀로 남겨진 적이 한순간도 없었다. 난생처음 홀로 된 시간에 숨이 넘어가는 딸을 부둥켜안고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두려움은 배가 되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나에게 하나님은 위로가 되어 주셨다. 살아오며 이렇게 많이 울어 본 적도 없었다. 하나님 아버지를 수없이 부르던 날, 다희를 통해 온전히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고 딸도 평안했다.


집으로 와주신 친정 부모님 덕분에 남편은 아침 일찍 병원에 올 수 있었다.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남편은 말없이 나를 꼭 안았다. 큰 폭풍우가 지나고 고요함이 찾아왔다. 병원 복도에서 딸의 집도의를 만났다. 따져 묻고 싶었지만 최선을 다해 수술한 의사에게 그럴 순 없었다. 대신 남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 딸은 여러 번의 고비를 넘겨야 했어요. 숨이 쉬어지지 않았었거든요.” “수술 후 흔히 오는 증상이에요.” 의사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자리를 떴다. 허무했다.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건가? 그 어느 때보다 두렵고 긴 밤을 보냈는데. 난 그렇게 한참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두 아들이 너무 보고 싶었다.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는 다른 아기의 누나, 형들은

10대라 병원 방문이 가능했다.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딸의 호흡과 열 체크를 해주러 간호사가 왔다. 내 모습을 본 그녀는 조용히 속삭이듯 “그 마음 이해해요. 저도 쌍둥이 딸이 있는데 한 명이 입원했었어요. 집에 있는 나머지 한 명이 눈에 밟혔어요.” 라며 딸을 살뜰히 돌봐 줄 테니 잠시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이해해 주는 마음은 고마웠지만 어린 딸을 두고 집에 갈 수는 없었다. 때 마침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아들은 울먹이며 “엄마... 보고 싶어.” 핸드폰 너머의 큰 아들 목소리에 목이 메었다.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고 숨을 고른 다음 "며칠만 더 있으면 돼 엄마도 우리 아들 보고 싶어." 전화를 끊고 창문 너머의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먹먹한 마음을 달랬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러웠다.


큰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친정 부모님이 읽어주었다. 친정 부모님은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왔다. 병실로 들어온 남편 품에 딸을 안겨주는데 마음이 급했다. 두 계단씩 껑충껑충 뛰어 내려갔다. 숨을 헐떡이며 로비에 서 있는 두 아들을 와락 안았다. 눈시울이 빨개진 첫째도 나를 꼭 안았다. 품에 안긴 둘째는 병원이 신기한지 두리번거렸다. 잠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밖으로 나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빵을 사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큰아들은 “엄마, 동생은

괜찮아? 엄마랑 다희는 언제 집에 와?”라고 물었다. 둘째는 엄마도 함께 집에 가자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순간 울컥했다. “이제 네 밤만 자면 집에 갈 수 있어. 네 밤새고 있어 알겠지?” 나는 두 아들을 꼭 안은 후 차에 태웠다. 차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녀석들 엄마의 빈자리가 클 텐데 잘 지내줘서 고맙다.’ 네 밤이 지나 딸은 건강하게 퇴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