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천사 딸은 방문 수업을 기다렸다.

by 베존더스

우리가 사는 독일의 Krefeld에서는 heipädagogisches Zentrum(하이페다고기쉐스 젠트룸) 치료교육센터가 있다. 치료교육 센터에서는 장애아기를 위해 생후 6개월부터 유치원에 들어갈 때까지 함께한다. 그곳에서는 다양한 놀이 모임뿐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방문수업도 한다. 처음에는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한다는 이야기에 좀 부담스러웠다. 일주일에 물리치료 두 번, 놀이 모임 한 번에 병원 진료까지 우린 이미 바빴다. 방문수업이 추가된다는 사실이 싫었다. 삼 남매로 집은 언제나 어수선하게 어질러졌다. 선생님이 매주 집에 온다면 대청소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내 일이 더 추가된 셈이다.


이미 두 아들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다희 스케줄은 또 왜 이리 많은지. 어느 날은 감당 못 할 걸 왜 이리 많이 낳은 거야 라며 소리 질렀다. 남편은 방문수업을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어느 것 하나 당연하게 없는데. 남편은 태연하게 뭐든 당연했다. 육아를 함께 하지만 주 양육자는 나였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건 언제나 불편했다. 안 그래도 쫓기는 시간 더 쫓기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힘들었다.


하지만 다희에겐 더없이 좋을 기회였다. 나 역시 시작하면 충분히 해낼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다희를 위해 주 1회 방문수업을 신청했다. 다희의 스케줄은 요일별로 꽉 찼다. 방문 수업이 정해지고는 마음이 더 분주했다. 방문 수업이 있는 전날 밤에는 아이들을 재우며, 고단한 몸을 쉬게 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 늘어져 있는 장난감이며 옷가지들을 치웠다.


아침이 밝자마자 두 아들을 학교, 유치원 갈 준비를 시켰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남편 손에 두 아들을 맡겼다. 방문 수업 날 만큼은 남편이 도와주길 바랐다. 아이들이 빠져나간 자리의 흔적을 정리했다. 얼마 후 방문 선생님이 왔다. 사람 좋아하는 다희는 좋다고 버둥거리며 선생님을 반겼다. 금발에 갈색 눈을 가진 선생님이 들고 온 가방은 보물 상자였다. 끊임없이 신기한 장난감들이 나왔다.


선생님이 가져온 촉감 책은 작은 집에 오리를 들여보내면 오리 소리가 났다. 강아지가 들어가면 강아지 소리도 났다. 다희는 무서워했다. 작고 귀여운 오리가 갑자기 커다랗게 ‘꽥꽥’ 소리치자 다희는 울음을 터뜨렸다. 선생님은 다희를 안아 달래며 다른 장난감을 꺼내 주었다. 쌀이 들어있는 긴 나무통은 움직일 때마다 비 내리는 소리가 났다. 다희는 신기한 듯 통을 위, 아래로 내렸다. 바로 울음을 멈췄다.


선생님은 올 때마다 신기한 장난감을 가지고 왔다. 접이식 긴 터널을 가져오기도 했고, 자석이 붙은 자동차를 위에서부터 내려보내면 쪼르륵 길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방문수업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고 힘들다며 투덜거리던 내 마음은 눈 녹듯 사라졌다. 다희 또한 선생님이 올 때마다 배 밀이를 하며 마중 나갔다. 다희의 격한 마중은 항상 선생님을 기쁘게 했다.


가끔 둘째가 유치원을 가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다희의 방문수업이 있으면 둘째도 함께 했다. 여러 다양한 놀이를 통해 둘째도 신나 했다. 둘째는 “다희는 좋겠다 재미있는 놀이 해서”라며 부러워했다. 방문 수업을 시작할 당시 다희는 6개월이었다. 유치원에 들어가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다희는 방문수업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했다.


다희는 태어나면서부터 독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만났다. 놀이 모임, 물리치료 담당 선생님, 언어치료 선생님 모두가 독일 현지인이었다. 2년간 한결같이 집에 방문한 선생님 역시 서른 중반의 독일 여성이었다. 그래서인지 다희는 유치원에 들어가서도 거부감 없이 적응했다. 어떻게 보면 두 아들 보다도 적응이 빨랐다.


다희는 아직 말은 하지 못하지만 독일어, 한국어를 구분한다. 한국말로 “다희야 가자!”라고 해도, ‘komm

Dahee wir gehen.’ (컴 다희 비어 게헨) 독일어로 말해도 다희는 얼른 집 밖을 나선다. 내가 만일 힘들다는 이유로 방문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쁨과 보람을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엄마로서 모든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쁘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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