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익숙해지지 않기를

by 베존더스



이유 모를 경련은 점차 사라졌다. 다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다. 한시름 놓았다. 다희는 신생 아 때부터 분유량이 조금만 많아도 위로 올렸다. 그런 이유에서 이유식도 늦게 시작했다. 소아과 건강 검진 때도 별다른 소견은 없었다. 다운천사를 위해 식단관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소화시킬 정도만 먹이다 보니 살이 찌지 않았다. 마른 다운천사는 힘이 없어 대 근육 쓰기가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물리치료를 힘들어했다. 2시간만 외출을 해도 피곤해했다. 두 아들 방학이 되면 가족 여행을 가곤 했는데 다희가 태어난 이후 이 역시 고민스러웠다.


두 아들은 아기 때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갔어도 괜찮았다. 반면 다희는 많은 부분에 신경이 쓰였다. 자유롭던 일상에 제한이 생겼다. 그저 병원에만 가지 않았으면 바랐다. 그 작은 바람도 우리에게는 사치였다. 뭐가 잘못되었는지 다희는 먹은 것마다 물을 뿜어내듯 토했다. 물조차 못 삼켰다. 또 입원이었다. 병원 생활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 피검사를 위해 주삿바늘을 꽂았다. 힘이없어 작은 소리로 우는 딸을 꼭 끌어 안았다. 검사 결과 위장에 문제라고 나왔다. 이 상황이 낯설지 않았다. 입원 수속도 익숙했다. 3박 4일 입원 후에 퇴원했다.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딸은 다시 음식을 게우기 시작했다. 다시 병원 짐을 쌌다. 이젠 짐 싸는 것도 베테랑이었다. 자주 오다 보니 간호사와 친분이 쌓였다. 주말이어서 병원 안은 적막하고 고요했다. 조용하던 병실에 의사가 들어왔다. “예쁜 아기예요. 제 여동생도 다운증후군이에요.”라는 의사의 말에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왔다. “지금은 자주 아프지만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거예요. 궁금한 게 있나요.?” “실례지만 여동생 나이가…” “26살이에요. 작은 일이지만 본인의 일을 하고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미 답을 얻은 느낌이었다. “00도 씩씩하게 자라나 뭐든 해낼 거예요. 다만 그 시간이 느릴 뿐이에요.” 난 딸응 낳고 누구에겐가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의사의 다정한 말에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이후로 의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아쉬웠다. 이름이라도 알아둘걸. 퇴원하는 날에도 볼 수 없었다.


의사 말에 힘입어 나는 전보다 씩씩하게 지냈다. 딸 또한 건강히 자랐다. 결혼하고 여름방학이면 한국에 갔지만 다섯 식구로 늘면서 함께 나가는 건 무리였다. 남편에게 둘째만 데리고 한국에 다녀오라 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약한 딸에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독일에 있는 친정엄마가 왔다. 며칠째 건강히 잘 지냈다. 아니,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딸은 토하고 설사까지 했다. 급기야 탈진 상태가 되니 경련을 일으켰다.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손끝이 떨렸다. 이대로 혼자 병원까지 운전해서 갈 자신이 없었다. 친한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는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병원에 가주었다. 피검사를 받고 바로 입원 수속을 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언니가 함께 했다.


친정엄마가 집에 함께 있어 다행이었다. 한국에 나간 남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애간장이 탔다. 시부모님도 걱정하며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이번에도 위장문제였다. 남편 없는 빈자리가 어느 때보다 크게 느껴졌다. 커갈수록 손에 힘이 생겨 손에 꽂힌 주삿바늘을 잡아당겼다. 온통 피범벅이 됐다. 난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이 모든걸 남편 없이 오로지 혼자 겪어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다. 아빠, 엄마 없이 지내고 있는 첫째가 걱정됐다. 마침 페이스톡이 걸려왔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00는?” 녀석, 마음이 힘들 텐데. 아직 어린 아들은 대견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5일 만에 퇴원했다. 그리고 남편이 한국서 돌아올 때까지 무탈했다. 소소한 일상은 기쁨이며, 감사였다.


2살을 맞은 딸은 정기적으로 받는 피검사에서 갑상선 항진증이 나왔다. 약을 조절하기 위해 며칠 입원해서 지켜봐야 했다. 이젠 만나지 않았으면 했던 간호사를 또 만났다. 반갑게 맞아주기까지 했다. 딸도 병원에 익숙해졌지만 피 뽑기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의사가 바늘을 가져오는 모습만 봐도 크게 울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주삿바늘이 여린 살을 찔러댔는지. 어느 때는 잘못 찔러 멍이 들기도 했다. 제발 이번 입원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랐다.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첫째는 학교 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했다. 게다가 아이를 살뜰히 봐주던 담임선생님이 육아 휴직을 냈다. 새 담임이 아이 성적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학교에 불려 가기를 여러 번, 결국 첫째에게 유급이 결정됐다. 이미 첫째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새로운 담임은 아이들에 애정이 없었다. 어찌 보면 유급이 첫째에게 나은 선택 일 수도 있었다.


다르게 태어난 딸을 돌보느라 첫째와 둘째를 더 신경 쓰지 못했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동생을 위해 포기하는 법을 빨리 알아갔다. 둘째는 기다림을 배웠다. 책임감이 강한 두 아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렸다. 딸은 약을 조절해가며 경과를 지켜봤다. 퇴원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약을 먹어야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원 생활에 난 지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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