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 천사 모습으로 우리 가정에 태어난 막내 딸의 첫 번째 생일이었다. 심장 수술도 겪어내고 이유 모를 경련으로 마음을 졸여야 했던 시간을 지나왔다. 그러기에 더 의미가 있었다. 돌잔치를 위해 가장 먼저 식당을 정하고 큰 방을 예약했다. 독일도 아이의 첫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일가친척 다 초대해서 파티를 연다.
첫아들 때에는 우리 부부가 학생 때라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잘 몰랐다. 조촐하게 초에 불을 끄고 집에 있는 물건들을 모아 돌잡이를 했다. 둘째 돌 때는 한국에 잠시 나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시부모님과 함께했다. 돌잔치를 위해 식당의 작은방을 빌리고 예쁘게 꾸며진 돌 상에서 식구들과 함께 사진도 찍었다.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돌잡이도 했다.
두 아들에게는 성장 동영상이 없다. 만들어야 하는 생각도 못 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다희는 아이 셋 중 유일하게 엄마 표 성장 동영상을 가지고 있는 아이다. 아이들이 다 잠든 밤 고요한 시간에 동영상 제작을 했다. 지나온 1년간 울었던 기억 저편에 다희로 웃음 짓던 날도 많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딸은 자기만의 시간 속에서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 가고 있었다. 딸은 감동의 아이다. 보통의 아이보다 배나 더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얼굴이 벌게져서 끙끙거리며 뒤집기를 하던 순간, 기려고 자세를 잡고는 앞뒤로 흔들흔들하던 모습. 책꽂이를 잡고 혼자 힘으로 일어서던 순간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마다 우리 가족은 함께였으며 다희의 성장에 함께
기뻐했다.
사진을 고르고 어울리는 음악도 선별하며 설명도 입력해 넣었다. 남편은 두 아들에게는 써주지 않았던 편지를 썼다. 오시는 지인들을 위해 감사한 마음을 담아 답례품을 정성 들여 포장했다. 돌잡이 소품은 인터넷에 들어가 일일 이 찾아 주문했다. 딸응 유모차에 태워 돌 잔칫날 두 아들이 입을 옷도 사러 다녔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하지 않았다.
돌 잔칫날, 새벽부터 일어나 딸을 위한 특별한 케이크도 직접 만들었다. 나의 친한 친구는 예쁜 꽃꽂이를 직접 해서 가져왔다. 돌 상이 한층 더 풍성했다. 손님들이 오기 전 장식도 달고 돌 상도 꾸몄다. 한국과 달리 꾸며주는 서비스가 없어 손수 다 해야 했다.
딸을 임신했을 때부터 출산하고 양육했던 과정을 함께 나눈 소중한 지인들이 모두 모였다. 한국에 계신 시부모님은 함께 하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함께 하셨다. 예상치 않은 모습으로 태어났다는 걸 알고 같이 울어준 친구, 건강하게 잘 자라날 거라 토닥여준 언니, 힘들 때마다 기도해 준 교회 어른들, 그리고 누구보다 마음 아파하며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낸 친정 식구들. 어느 누구 하나 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상하거나 불편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모인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욱신거리고 뜨거운 눈물이 타고 내려갔다. 오지 않을 것만 같이 길게 느껴졌던 1년이 왔다.
다 모인 자리에서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딸의 성장 동영상을 보며 뭉클한 분위기에 눈시울이 벌게진 지인도 있었다. 남편이 편지를 읽을 때 모두 숨죽여 귀 기울였고 다희가 돌잡이를 하러 나설 때는 한껏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자기 눈앞에 보이는 장난감들을 보며 어리 둥절했지만 이네 곧 해맑은 미소로 청진기를 잡았다. 잦은 입원과 병원 방문으로 청진기가 익숙했던 건 아니었을까? 앞으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고 건강히 자라나기를 바란다. 한복을 입은 나와 딸을 보며 고유 한국의 색감에 눈을 떼지 못했었던 독일 지인도 있었다. 돌잡이에는 더 큰 흥미를 보였다. 남편은 실, 청진기, 마이크, 돈, 책, 망치, 연필, 공 의미를 독일어로 설명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인들께 답례품을 드렸다. 독일에 오래 사신 교회 어른들은 한국식 돌잔치를 처음 경험했다며 답례품을 받을 때 되레 미안해하셨다. 지내온 1년, 건강한 심장을 주시지 않았던 것을 원망했다. 이유 모를 경련으로 왜 또 힘들게 하는지 증오도 일었다. 다희와 함께 하면서 내 원망과 증오는 감사로 바뀌어 갔다.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던 모든 순간, 내면이 단단해져 갔고 난 그렇게 조금씩 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