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익숙해지지 않기를

by 베존더스



이유 모를 경련은 점차 사라졌다. 다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에 한시름 놓았다. 마음을 놓은 지 며칠이 지났다고 딸은 먹은 것마다 물을 뿜어내듯 토했다. 물을 먹어고 뿜어냈다. 또 입원이었다. 피검사를 위해 주삿바늘을 꽂았다. 힘이 없이 작은 소리로 우는 딸을 꼭 끌어안았다. 검사 결과 위장에 문제라고 나왔다. 입원 수속에 익숙해져 갔다. 자유롭던 일상에 제한이 생겼다. 그저 병원에만 가지 않았으면 바랐다. ‘그 작은 바람도 우리에게는 사치인 건가?’ 3박 4일 입원 후에 퇴원했다.


두 달 만에 딸은 또다시 음식을 게워냈다. 병원 짐 싸는데 베테랑이 되었다. 자주 오다 보니 간호사와 친분이 쌓였다. 주말 병원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했다. 의사가 들어왔다. “예쁜 아기예요. 제 여동생도 다운증후군이에요.”라는 의사의 말에 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뜨거움이 올라왔다. “지금은 자주 아프지만 건강하게 자라나게 될 거예요. 궁금한 게 있나요.?” “실례지만 여동생 나이가…” “26살이에요. 작은 일이지만 본인의 일을 하고 있어요.”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이미 답을 얻은 느낌이었다. “00도 씩씩하게 자라나 뭐든 해낼 거예요. 다만 그 시간이 느릴 뿐이에요.” 난 딸을 낳고 누군가에게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의사의 다정한 말에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마음에 힘이 생겼다.


결혼하고 1년에 한 번씩 꼭 한국에 갔었다. 약한 딸을 낳고는 함께 한국에 가는 건 무리였다. 남편에게 둘째만 데리고 한국에 다녀오라 했다. 남편이 없는 동안 딸에게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몰라 독일에 사는 친정엄마를 불렀다. 건강히 잘 지냈다. 아니, 잘 지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딸은 토하고 설사까지 했다. 급기야는 탈진 상태가 되어 웅크린 작은 몸에 경련을 일으켰다. 덜덜 떠는 딸을 보니 무서운 마음에 손끝이 떨려 혼자 병원까지 운전해서 갈 자신이 없었다. 친한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니는 한달음에 달려와 함께 병원에 가주었다. 피검사를 받고 바로 입원 수속을 했다. 일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 언니가 함께 했다.


이번에도 위장문제였다. 입, 퇴원을 자주 하며 주삿바늘이 싫었던 딸은 손에 꽂힌 주삿바늘을 잡아당겼다. 온통 피범벅이 되었다. 간호사를 불렀다. 딸의 옷을 갈아입히고 주삿바늘을 다시 꽂아야 하는 딸을 달랬다. 이 모든 걸 남편 없이 오로지 혼자 겪어야 하는 상황이 버거웠다. 아빠, 엄마 없이 지내고 있는 첫째가 걱정됐다. 페이스톡을 걸었다. “엄마, 나 잘 지내고 있어. 00은?”라는 아들의 목소리에 울컥했다. 아직 어린 아들은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번 입원은 좀 길었다. 5일 만에 퇴원했다. 그리고 남편이 한국서 돌아올 때까지 무탈했다. 소소한 일상은 기쁨이며, 감사였다.


2살을 맞은 딸은 정기적으로 받는 피검사에서 갑상선 항진증이 나왔다. 약을 조절하기 위해 며칠 입원해서 지켜봐야 했다. 이젠 만나지 않았으면 했던 간호사를 또 만났다. 반갑게 맞아주기까지 했다. 딸도 병원에 익숙해졌지만 피 뽑기는 도무지 익숙해질 수 없었다. 의사가 바늘을 가져오는 모습만 봐도 크게 울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주삿바늘이 여린 살을 찔러댔는지. 어느 때는 잘못 찔러 멍이 들기도 했다. 제발 이번 입원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바랐다.


다르게 태어난 딸을 돌보느라 첫째와 둘째를 더 신경 쓰지 못했다. 첫째는 어려서부터 동생을 위해 포기하는 법을 빨리 알아갔다. 둘째는 기다림을 배웠다. 책임감이 강한 두 아들을 보면 늘 마음이 아렸다. 딸은 약을 조절해 가며 경과를 지켜봤다. 퇴원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한 달에 한 번 검사를 받아야 했고 약 조절하며 먹어야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병원 생활에 지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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