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만 하면 건강해 지는 줄 알았다.

by 베존더스

퇴원하여 집으로 오니 행복했다.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두 아들은 엄마가 돌아와 기뻐하며 꼭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병원을 오가야 했던 남편 대신에 두 아들을 돌봐준 친정엄마에게 감사했다. 독일 병원 밥만 먹어 온 딸을 위해 엄마는 따뜻한 한식을 차려 주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는 순간 행복했다. 독일 병원 식사는 빵, 수프, 고기, 스파게티여서 먹어도 허한 느낌이었다. 한국 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이 맞다. 밥을 먹으니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집은 어질러져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갔다. 우리 다섯 식구가 함께 있는 집은 안정감을 줬고 매일 밤 평안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다희의 수술 자국도 아물었다. 이제 다희는 잘 회복해 건강해질 일만 남았다.


두 달쯤 지났을까. 잘 지내오던 다희가 갑자기 입에 힘을 꽉 주고 온몸을 떨었다. 그 떨림은 경련에 가까웠고 30~40분마다 2초 정도 떨었다. 다시 마음이 불안했다. 병원에 갈 준비를 하는 동안 친정부모님이 왔다. 언제나 달려와 주시는 친정 부모님께 고마웠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는 마음은 무거웠다. 다시 입원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긴장됐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피검사, 심장검사, 뇌파 검사가 이루어졌다. “결과는 입원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라는 의사의 말에 남편은 다희를 안고 입원 수속을 했다. 난 그사이 짐을 싸러 집으로 갔다.


이제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내 바람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아들에게 또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어떻게 말할지. 마음이 힘들었다. 집에 도착해 두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다희가 아파서 다시 입원해야 해, 며칠 또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해.” 라는 내 말에 두 아들은 안겨서 떨어지지 않으려했다. 두 아들을 달래고 나오는 길은 슬펐다. 수술만 하면 건강해지는 줄 알았다. 낯선 병원 생활을 또 해야 한다니. 병원 가는 길이 길게 느껴졌다.


다희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남편 품에 안겨 잠든 모습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직 아가라 표현도 못 하는 다희는 얼마나 힘들까. 남편은 잠든 다희를 침대에 살며시 눕혔다. 아빠를 기다릴 두 아들이 있는 집으로 갔다. 다희와 단둘이 남겨진 병실은 크게 느껴졌다. 하루가 지나고 의사 회진이었다.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은 없었어요. 경련은 계속되었나요?” “네 아이가 경련을 계속해요” “더 지켜봅시다. 지금으로서는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의사는 경련이 올 때마다 콜 버튼을 누르라는 지시만 내렸다. 병원에 있는 게 무의미했다.


소아 병동이라 형제, 자매 방문이 가능했다. 남편은 두 아들을 데리고 왔다. 전에 입원해 있던 심장전문 병원과 달리 두 아들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두 오빠를 본 다희는 기분이 좋아 버둥거리며 옹알이했다. 다희의 경련은 계속되었다. 뇌파 검사를 또 했다. 결과는 마찬가지.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이유를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다행인 건 경련 횟수가 줄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입원한 지 5일 만에 퇴원했지만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집에 왔다. 경련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경련이 심해지면 다시 입원하자는 의사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다희를 위해서는 뭐든 하고 싶었다. 다시는 입원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유 모를 경련으로 입원하고 퇴원했다는 소식을 한국에 있는 식구들도 알게 되었다. 함께 기도했다.


두 아들을 키우며 건강한 것은 당연하다 여겼다. 웬만해서 병원 가는 일이 없었다. 예방접종을 하러 가끔 갔을 뿐이다. 다희를 키우며 알게 됐다. 어느 것 하나도 당연할 수 없다는 것을. 이 모든 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임을 알게 되고 나니 두 아들이 무탈하게 건강히 자랐다는 게 새삼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