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머물다 간 생명

by 베존더스

두 줄이었다. 이럴 수가. 생리 주기가 지나 이상하다 느꼈는데 임신이었다. 나에게는 아직 이른 셋째였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둘이라 딸이 하나 더 있었으면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셋째가 빨리 생겨 당혹스러웠다. 둘째를 난 지 겨우 일 년이 지났을 뿐인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둘째가 생겼을 때는 첫째와 터울이 많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반면 5년 만에 다시 아기를 키워야 해서 둘째여도 첫아이 키우듯 힘들었다. 몸은 고단해도 나이 터울이 없는 게 좋을 수 있다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사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빨리 생긴 셋째를 반기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딸이 4.2kg 둘째를 낳으며 고생했던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둘에서 끝냈으면 바랐다. 시어머니는 아직 어린 둘째를 안쓰러워했다. 한 살밖에 지나지 않은 둘째가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동생을 봐야 하는 게 못 마땅했다. 갑자기 생긴 셋째를 아무도 반기지 않았지만, 남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감사히 받자”라고 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헤쳐 나가 보기로 했다.


그쯤 둘째는 막 돌을 지났을 때였다. 아직 어리기에 돌봄이 많이 필요했다. 둘째는 개구쟁이였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두루마리 휴지를 화장실 변기에 처박았다. 손에 닿는 건 뭐든 끌어다가 몸에 바르기 일쑤였다. 몸에 향수 냄새가 나는 날도 있었으며. 식초 냄새가 나는 날도 있었다. 마른 비누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야무지게 바르기도 했다. 물로 닦아낼수록 거품이 그치지 않았다.


둘째 손이 닿지 않는 건 첫째가 친절하게 건네주고 마음껏 해보라고 시키기까지 했다. 임신 초기지만 안정을 취하며 쉴 수 없었다. 그 당시 자동차도 없었다. 큰아들 유치원까지는 집에서 거리가 멀었다. 걷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또 걷는 데 30분이 걸렸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둘째와 함께 했다. 유모차도 들어 올렸다 내렸다 반복했다. 임신 초기라 무리가 되었다.

몸은 항상 고단했다. 두 아들 노는 모습을 보며 옆에 앉아 졸기도 했다. 피곤이 누적되어 방광염이 생겼다. 배 속에 아기가 걱정되었다. 바로 산부인과로 갔다. 소변 검사, 피검사를 했다. 아기에게 해롭지 않은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먹고 하루 지나도 낫지 않으면 다시 오세요.” 의사의 말에 집에 오자마자 약을 먹고 쉬었다. 하루가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피가 나왔다. 한달음에 산부인과로 갔다. 초음파 검사, 피검사, 소변검사를 했다. “일을 무리해서 했어요? 유산 기가 보여요. 무조건 안정을 취하며 쉬세요.” 의사의 말을 듣고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눈물이 났다. 내 부주의로 그런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다음 날이 되어 하혈은 더 심해졌다. 산부인과에선 안정을 취하며 지켜보자는 말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배를 움켜잡고 울고 또 울었다. ‘하나님 제 부 주의에서 비롯된 거더라도 데려가지 마세요 ‘ 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밤 아기 낳을 때처럼 진통이 왔다. 무서웠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리까지 아팠다. 내 손을 잡고 있는 남편의 손에 땀이 났다. 진통이 계속되며 밑으로 뜨거운 느낌이 났다. 묵직한 무언가가 나왔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기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는데. 사랑이라는 태명을 가지고 4개월 머물다 간 나의 작은 생명. 이름처럼 사랑해 주지 못해 미안했다.


날이 밝아지자 아기 낳는 큰 병원으로 갔다. 초음파 검사를 했다. “자궁 안은 깨끗이 비워져 수술을 하지 않아도 돼요” 의사의 말에 또 눈물이 났다. 초음파 상의 화면에도 아주 깨끗했다. 며칠 전만 해도 작은 아기가 있었는데. 가면서도 엄마 수술하지 않게 해 줬구나. 마음 한편이 저며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