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6살때 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걱정했다.
“나무는 대머리가 될 것 같아.” 같은 나이일 때 둘째는 뭉게뭉게 구름을 바라보며 “구름이 솜사탕 같아.”라고 표현했다. 올해 6살인 ‘다운 천사’ 딸은 아직 말이 서툴다. 이제나 저제나 말이 트이려나 나를 기다리게 한다.
딸은 2살에 ‘엄마’를 처음으로 말했다. 그때의 감동은 마치 첫아기가 ‘엄마’를 처음 불러줄 때와 같았다. 설레고 심장이 몇 배나 더 빠르게 뛰었다. 그렇게 말이 트이는 줄 알았다. 그 이후로 4년 동안 ‘엄마, 아빠’ 이외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아기가 말을 트이기 전 옹알이를 하듯 알아듣지 못하는 말만 쏟아냈다.
나의 인내심은 좌절되어 땅으로 파고 들어갔다. 지친 마음을 달래기라도 하듯 언어치료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다운 천사는 언어가 보통 6살이 되어야 트여요. 이중언어라 시간이 몇 배나 더 걸려요. 어머니, 지치면 안 돼요. 우리 함께 더 많이 노력해요. 언젠가는 꼭 말할 거예요. 말은 느리지만 독일어를 곧잘 알아듣고 행동으로 옮겨요.”라는 말에 좌절했던 마음을 다 잡았다.
캄캄한 밤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딸을 재우려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잘 자”라고 속삭였다. 언제나 그렇듯 피곤이 몰려와 먼저 눈을 감았다. 그런데. 내 귀에 딸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 자.” 생각지도 못한 딸의 말에 마음이 일렁이며 눈물이 떨어졌다. ‘잘 자’라는 말이 이리도 감동적이라니 나는 딸을 꼭 끌어안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 등교, 등원 준비로 분주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내 바지자락을 딸이 잡아당겼다. 냉장고로 나를 끌고 가서는 “줘” 라며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매일 아침 요구르트에 갑상선 약을 타서 먹였다. 바쁜 아침 깜빡했던 나에게 달라고 했던 거였다. 나는 얼른 냉장고 문을 열어 요구르트를 꺼냈다. 갑상선 약을 타서 주니 해맑게 웃으며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원에 가는 길 한 두 발자국 걷던 딸은 나에게 두 팔을 벌렸다. “엄마, 안아.”라는 말에 나는 주저 없이 바로 14킬로그램이 되는 딸을 안아 올렸다. 내 품에 안긴 딸의 얼굴을 마구 비비며 사랑을 속삭였다. 그런 나에게 보답하듯 딸은 말했다. “예쁘다.” 딸의 작은 목소리는 부드럽고 섬세한 봄바람 같았다.
딸은 자기만의 느린 시간 속에서 아주 천천히 자라나고 있었다. 그 시간 속에서 숱하게 들려오던 말들을 조용히 흡수하고 있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