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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벌레

별 한 빛, 모래 한 알 13

by 모카레몬
공벌레3.jpg




동그랗게 말았네.
둥글게 굴러가네.
무서운 것도 아닌데
꼬마야 왜 숨어?


작은 방패 같은 등
눈을 꼭 감았네.
조용히 숨을 고르고
햇살 한 줌 기다리네.


그 속은 따뜻할까?

흙 속 집이 좋은지
컴컴한 돌 틈이 편한지
네가 궁금해.


공벌레야, 공벌레야.
작은 세상 굴리는 너도
고민이 있을까?


웅크리고 있는
내가 너 같구나.






아이들과 함께 학교 화단에 나간 늦봄, 어느 날입니다.

관찰학습 시간.

아이들은 작은 손에 돋보기를 들고, 풀잎 사이를 탐험하듯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지요.

존재의 가장 작고 고요한 것들과 눈을 맞추는 시간입니다.

그 옆을 천천히 걸으며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갑니다.

주형이가 흙이 잔뜩 묻은 손바닥 한가운데를 들어 보입니다.

"이것 봐요, 선생님. 공벌레예요! 건드리니까 동그랗게 말아요.

무서운 거 아닌데... 얘 걱정 있나?"

주형이 짝 예빈이가 눈을 흘기며 가르칩니다.

"야, 네가 건드리니까 공벌레가 무서워서 말잖아!"



주형이는 공벌레의 단순한 반응을 넘어서서 무섭다는 감정을

자기 해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주형이에게서 배웁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여백에서 문득 떠오르는 것이 발상입니다.

어떤 계산과 조작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 나오는 언어의 싹이기도 합니다.

관찰과 사유가 충분히 쌓였을 때,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 발상입니다.

이것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의 산물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때로는 불현듯 번개처럼 번쩍 하며 생각날 때도 있습니다.



주형이가 시인이었습니다.

주의 깊게 응시한 사물로부터 얻는 존재를 불러 내는 신성과 창조성은

아이들에게 가득 고여 흐릅니다.



하루를 지내면서 언제 어디서든, 눈에 띄는 아이를 본다면 유심히 관찰해보고 싶습니다.

혹, 주형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suno ai 음원 제작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사진출처> pintrest

#공벌레 #늦봄 #관찰 #사유 #발상 #창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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