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day.
활을 만든 나무처럼 유연하고 길 위의 신호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라.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을 만나거나 더 나은 기회를 포착하면 주저 없이 방향을 바꿀 줄 아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물과 같은 속성을 지녔다. 바위를 돌아 흐르고, 강물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때로는 텅 빈 구덩이가 가득 차도록 호수를 이루었다가, 넘치면 다시 흘러간다. 물은 제가 가야 할 곳이 바다임을. 언젠가는 바다에 닿아야 함을 절대 잊지 않기 때문이다.
아처. 파울로 코엘료. 문학동네. 2025.
활은 휘어야 멀리 나아간다.
부러지지 않으려면, 한 번쯤은 스스로를 휘어야 한다.
삶도 그렇다.
단단하기만 한 마음은 결국 제 고집에 금이 가고,
유연함을 아는 마음은 세상의 리듬에 귀를 기울인다.
길 위의 신호를 읽는다는 건,
세상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안의 ‘흐름’을 읽는 일이다.
언제 멈추고, 언제 돌고, 언제 흘러야 하는지.
그 신호를 알아듣는 사람만이,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는다.
나도 그 ‘흐름’을 배우는 중이다.
유.연.함.을 닮고 싶었다.
한자라도 꺾지 않고, 그대로 굽히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흐르는 물이나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그러나 내 안에는 늘 '대쪽'이 살았다.
지켜야 한다고 믿는 신념이나 질서는 내가 스스로 서 있기 위한 경계선 역할을 했다.
그 선은 나를 세워주는 뼈대이자, 때로는 나를 묶는 굳은살이기도 했다.
원칙을 놓치면 어딘가 흐트러질 것 같았고, 평온함을 잃을 것 같았다.
"넌 유두리가 없어."
예전에 종종 들었던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원칙을 고수하는 난, 더 조용해졌다.
내면은 더욱 단단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유두리 없는 사람도 유두리를 배우는 시간이 온다.
세상은 나를 매만지고, 깎고, 문질러
결국 나를 조금은 부드럽게 만들어놨다.
이젠 누가 뭐라 해도,
‘유두리’는 내 인생의 필수 과목이다. 재수강도 없다.
그렇다고 완전히 단단한 사람은 아니다.
빈틈이 많고, 어딘가 허술하다.
그 허당기는 내 안의 작은 숨구멍이 되어, 팽팽한 마음에 바람을 넣어준다.
단단함과 허술함이 함께 공존한다.
유연함은 사실, 그런 허당의 연장선인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유연하지 못해 오해받는 일도 있었다.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고집으로 읽히고, 진심이 차가움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늘 서운하지만,
그럴수록 신뢰와 의리의 자리에선 단단한 사람이고 싶었다.
한 번 믿은 사람들에게는 끝까지 등을 돌리지 못한다.
그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나를 부드럽게 만든다.
내가 세워놓은 원리들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건 타인을 가르기 위한 칼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는 최선이 된다.
들어오려면 문을 두드려야 하지만,
들어오고 나면 편히 앉을 수 있는 그런 경계.
그게 나의 ‘최선이자 경계’이다.
그 최선을 놓은 채 관계를 이어가면 편안하지 못하다.
그래서 가까운 사람이라도 원칙을 어기고 경계를 넘어오면 조용히 거리를 둔다.
단호하고 분명하다.
유연함은 단단함과 경계의 반대편에 있지 않다.
그건 단단함과 경계와 곁을 동시에 지키는 더 큰 온도의 힘이다.
휘어지되 부러지지 않고,
멈추되 다시 일어서는 기술.
원칙은 나를 묶는 줄이 아니라,
다시 펴지게 하는 근육이다.
유연함은 타협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도 나 자신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감각이다.
유연하되 방향을 잃지 않고,
단단하되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 싶다.
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유.연.성.(柔.軟.性)
*동아 새국어사전> 부드럽고 연한 성질, 또는 그 정도.
*Daum사전> 어떤 일을 대할 때, 원리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형편과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응하는 성질
내 사전엔 이렇게 고쳐 쓴다.
유.연.함.
살면서 부러지지 않기 위해 배우는 적당한 허당의 기술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12:9)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사진. pixa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