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day.
우리 곁에서 고요히 빛을 쏘고 있는 섬광같이 번득이는 영감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자연이 존재하는 궁극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끝까지 묻게 하라.
자기신뢰철학/영웅이란 무엇인가. R.W. 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정오 12시.
소수의 작가들이 모여, 평소 읽고 있는 책의 문장으로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우리가 나누는 문장에는 실제적인 자신의 삶과 생각이 닿아있다.
문장 전체의 의미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 같거나, 너무 낯설어서 오래 바라보게 되어 나눈다.
그런 문장으로 품고 있는 생각을 말로 풀어내면 듣는 이들의 다양한 삶과 생각이
연결되어 펼쳐지고, 공감과 공명으로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어진다.
섬광처럼 스쳐오는 단어나 문장은 가슴을 일렁이게 하고, 되새김질하는 희열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녀가 나눈 문장이 떠나지 않고, 꼬리를 물고 끄적이게 한다.
그녀도 이 문장으로 글을 썼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나 또한 이 문장으로 글을 썼으니 그녀도 알게 되면 나처럼 좋아하겠다.
"우리 곁에서 고요히 빛을 쏘고 있는 섬광같이 번득이는 영감을 집요하게 추궁하여
자연이 존재하는 궁극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끝까지 묻게 하라."
자연은 꾸미지 않고 존재를 드러낸다.
유연하고 단순하면서도 명료한 방식으로 보여 줄 뿐, 우리처럼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순리대로 흐르고, 질서 속에서 혼돈조차 제 자리를 지킨다.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는 건, 자연이 우리를 그들의 세계로 초대하는 일과도 같다.
사람은 자연을 배경으로 살아간다고 믿지만, 어쩌면 자연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에너지가 우리의 정신을 일으키고, 그들의 질서가 우리의 혼란을 가다듬는다.
시를 쓰려다 산문시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닌 어정쩡한 글이 되었다.
다만 생각을 끄적인다, 이 또한 무용할지라도...
지구의 3층에서 태양이 한 줄씩 인쇄된다.
그때마다 공기의 페이지가 바뀐다.
햇빛은 활자처럼 담벼락에 눌러 찍히고, 사람들의 얼굴 위에 무늬처럼 번진다.
저마다 우리의 하루는 인쇄되고, 우리의 삶은 빛의 농도 위를 걸어간다.
태양은 거대한 인쇄기다.
빛의 활판이 하늘 위에서 천천히 돌아가면
매일 새로운 원고를 찍어내듯 세상을 새로 쓴다.
공기는 그 페이지의 여백이 되고, 바람은 넘겨지는 소리다.
우리가 느끼는 온도, 냄새, 소리까지도 모두 그 인쇄과정의 미세한 흔적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도 빛의 한 조각.
입에서 흐르는 말들이 서로의 공기 속에 번지고
그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마주하는 이의 마음에 찍혀 남는다.
사람이 사람을 향해 말을 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의 내면의 빛을 세상에 인쇄하는 일이다.
저녁이 찾아오면 태양의 인쇄기는 멈추고
세상은 낮의 활자를 덮고 밤의 표지로 넘어간다.
그 순간 별들이 고요한 교정의 표시를 남긴다.
낮동안 우리가 썼던 후회와 폭소와 사랑과 미움과 웃음과 슬픔의 문장들은
수정되고 묵음 속에 기억 속으로 저장된다.
새로운 날,
태양이 처음처럼 새로운 한 줄씩 인쇄하면
공기의 페이지가 넘어가며 하루가 열린다.
우리는 다시 그 책 속으로 들어가
스스로의 문장을 계속 써 내려간다.
우주는 자연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빛을 주었고
그 빛으로 우리는 저마다의 세계를 써 내려간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복음 1:1~3)
글벗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