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 잇다.

23 day.

by 모카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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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음에는 사물이 제각각이며 홀로 존재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다가 차츰 두 개의 사물을 잇는 방법을 깨닫고, 그 사물들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자연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세 개를 잇고, 삼천 개를 잇대어 놓고, 스스로 통합 본능에 따라 몰입해서 줄곧 사물들을 묶고 변경과 변칙들을 줄여 나가며,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뿌리를 찾아내게 됩니다. 마침내 그 뿌리에서 멀리 떨어진 전혀 다른 모습의 사물들이 하나로 이어지며, 하나의 가지에서 꽃이 피어납니다.


자기신뢰철학/영웅이란 무인가. R.W. 에머슨. 동서문화사. 2020.






어린 눈에는 세상이 흩어져 보였다.

나무는 나무였고, 돌은 돌이었고, 풀은 풀이었다.

빛을 통해 모든 사물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배우고 경험하면서 두 사물 사이를 이을 수 있었다.

하늘과 땅, 나무와 바람, 마음과 마음, 저녁과 별, 나와 너와 우리...

비교하고 분류하고 조합하고 묶으면서

비슷한 것 끼리, 서로 다른 것 끼리, 의미에 따라

하나의 결로 엮이기도 하고, 이어지기도 했다.

초등학교 때 밥냄새와 흰 연기와 새를 이어 일기를 썼는데

담임 선생님의 특급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분리되어 있는 것을 하나로 엮거나 꿰어내거나 잇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심겨두신 창조성이다.


난 그것을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수십 가지 조각천을 모아 엮고 이어서 밥상보나 조각보를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내는 것을 보았다. 손바닥보다 더 작은 천 조각들.

흰색, 빨강, 노랑, 연두, 파랑, 보라, 색동, 자주, 검정, 주황...

수십 가지의 색깔들의 천들이 할머니의 손을 통해 새나 나무 모양의

조각보나 산과 강이 누벼진 조각보로 태어났다.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백이 되는 천 조각들이 잇대어져 하나의 큰

그림을 완성시켰다. 어린 마음에 그것은 대단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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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를 처음 만난 것은 동네 작은 성당벽의 긴 창문이었다.

미사를 드리면서 그 창문을 더 오래 바라보곤 했다.

햇빛이 색유리를 통과하며 실내 바닥과 사람들의 얼굴에 물결처럼 번졌고,

그 빛은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색으로 물들였다.

오르간 소리는 투과되는 빛에 따라 소리의 울림과 높낮이를 무수한 음으로 변주했다

경외감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거룩함이 물밀듯 밀려오는 느낌을 매번 받았다.


두 번째로 스테인드글라스를 만난 것은 큰 숙모의 서재였다.

유럽의 도자기들과 색 유리공예, 스테인드 글라스에 관한

두꺼운 예술서적들이 책장 한편에 빼곡히 꽂혀 있었다.

교회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고,

이국에 대한 그리움을 키운 것도 그때부터였다.


지식과 경험이 쌓인 후 알게 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히 ‘빛을 예쁘게 통과시키는 유리’가 아니라,
인간이 빛을 해석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어떤 이는 색유리를 성스러운 이야기의 매개로 썼고,
어떤 이는 전쟁의 황폐함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으려는 신념의 표현으로 만들었다.
빛은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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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만의 색유리를 품고 살아간다.

기쁨과 슬픔, 상처와 자존심이 겹겹이 쌓여

빛을 굴절시키고, 마음의 스펙트럼을 만든다.
투명함을 미덕이라 여기지만, 사람의 마음은 투명하지 않다.
오히려 불투명함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함께 책글을 나누던 작가들과 ‘바라보기’에 대해 토론하던 날,
스테인드 글라스의 창문이 떠올랐다.

각자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조각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각자의 삶의 빛이 통과하고 있었다.

앎과 배움과 깨달음과 실천과 실수와 어리석음과 오만의 색으로...

그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이야기 줄기가 만들어졌다.

모두 삶의 색깔은 다르지만 같은 뜻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삶은 조각보와 같고 스테인드글라스를 닮았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파편들은 제각기 제 색으로 빛나지만,

서로를 붙들며 하나의 조각보가 되고, 하나의 창이 된다.

빛은 그 틈을 따라 들어오고,

조각난 천과 색유리 들은 그제야 제 몫의 빛을 낸다.


아직은 이해되지 않아도

언젠가 삶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며,

환하고 아름다운 인생의 태피스트리를 마주하게 될 것을...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린도전서 13:12)


글벗 되어 주시고,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각 같은 오늘도 아름다운 빛 한 줄기 발견하는 시간 보내시길 바래요❤️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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