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짓는 문장 75.
삶은 섞임과 분리의 리듬이다
Life keeps time
between mixing and separation.
예의 기능은 화합이 귀중한 것이다. (중략) 화합을 이루는 것이 좋은 줄 알지만 화합을 이루되 예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또한 세상에서 통하지 못하는 것이다.
논어. 공자. 현대지성. 2018
몇 달 전, 도트블랭킷은 남편과 산책을 하다가 샐러드를 먹자는 말로 가게 된 곳이다.
평일이지만 웨이팅을 하는 곳이었고, 우리 테이블 외 모든 손님들이 20~30대 연령이다.
우리 부부가 가장 오래된 사람이다.
하얀 벽과 노란빛 조명, 재즈, 혼자, 둘, 삼삼오오 다정한 분위기가 오븐에서 구워지는 새우향과 섞인 저녁이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곳. 주문을 하고 받는 소리 없이 이어폰을 꽂은 청년은 결코 외롭지 않아 보인다.
자기 취향대로 스마트폰 영상을 보며, 자기 리듬대로 먹는다.
사람들은 한 공간에 있지만 대화가 적고, 소리가 낮고, 시선이 조용하다.
샐러드라는 한가지 메뉴로 가게가 꾸려지는 것은 그만큼 수요도 많다는 얘기다.
언제부턴가 우후죽순 생기는 샐러드 가게가 익숙하다.
그건 '유행'의 의미를 넘어 삶의 '방식'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간다는 뜻이다.
한 그릇으로 정확히 한 사람에게 배당되는 음식이기도 하며, 덜어 먹지 않아도 된다.
비빔밥은 샐러드와 성격이 닮았으면서도 다른 음식이다.
비빔밥 한 그릇 안에는 고사리, 도라지, 콩나물, 당근, 애호박, 소고기, 계란, 고추장, 참기름이 들어간다.
따로 씻고, 따로 데치고, 따로 볶고, 따로 무쳐서 한 그릇에 담는다.
각자의 색깔과 곁을 지킨 채로 모여있다가, 비비는 순간 하나의 맛이 탄생된다.
비비는 행위는 한국 사회가 오래도록 살아온 방식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것들이 한데 모여 강제로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곁을 조금씩 양보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일처럼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밥상은 늘 방한가운데에 놓였고, 국은 큰 냄비로 끓였다. 김치는 한 접시에 가득 담아 나눠 먹었다. 함께 먹는다는 말은 함께 산다는 것이고, 함께 산다는 말은 함께 참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 그릇을 ‘하나의 맛’으로 만들어버리는 비빔밥과 달리, 샐러드는 섞어도 각자의 결이 남는다.
완전히 하나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서로를 덜 침범한다.
어떤 날은 샐러드가 필요하다. 무엇이든 넘쳐나는 과잉의 시대에 스스로에게 주는 절제의 음식이다.
그 저녁에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겹쳐졌다.
우리 부부가 가장 오래된 사람처럼 보였던 이유는 나이가 아니라, 함께하는 방식이 오래된 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함께 있느냐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가끔 너무 많이 섞이며 상처를 내고, 이제는 너무 덜 섞이며 외로움을 키운다. 삶은 늘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지속된다. 필요할 때는 비빔밥처럼 따뜻하게 섞이고, 지칠 때는 샐러드처럼 조용히 물러서는 것도 필요하다. 때로는 홀로 있는 고독도 필요하다.
시대는 바뀌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함께하기를 원한다.
다만 그 함께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서로에게 독립적이며, 때로는 서로를 잘 비비며 살아가는 일이란, 샐러드와 비빔밥 사이를 오가는 일이다. 어떤 날은 섞여야 살고, 어떤 날은 떨어져야 숨을 쉰다. 섞일 때는 따스하게, 떨어질 때는 다정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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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벗 되어 머물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 날, 새로운 나로 힘찬 하루 보내세요^!^
대문사진. by mocalemon.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