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도 아닌데 이런 대기라니

시험관시술-난임병원

by 김삐끗

이른 아침, 난임병원 앞 횡단보도에서 초록불 신호를 기다리며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1시간 안에 모든 진료를 끝낸 뒤,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기' 미션을 수행 중이었다.

횡단보도에 20대 후반~3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분이 내 옆에 서더니 나와 같이 시계를 확인하며 난임병원을 바라보았다.


앗. 경쟁자다.


나와 진료받는 의사 선생님이 같은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와 목적지가 같은 건 확실했다. 내 순서 앞에 한 명이라도 더 진료받는 분이 있는 경우, 길면 20분까지도 내 진료가 뒤로 밀려난다. 그렇게 되면 지각하지 않고 출근하기 미션을 완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힐끗거리며 그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득 안고 발에 부릉부릉 시동을 거는데, 왠지 그분도 나를 의식하며 초록불 신호에 빠르게 발걸음을 떼기 위해 발바닥을 들썩이는 것 같았다. 우리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초록불이 켜지자 빠르지만 빠르지 않은 척을 하며 척척척 앞으로 나아갔다. 신속한 손놀림으로 신분증을 꺼낸 뒤 재빨리 키오스크에서 접수를 하자 내 이름이 1등으로 접수되었다. 휴우.




난임병원은 기본적으로 대기가 길다.

사람이 많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의사 선생님이 시술을 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난임병원을 찾았을 때 1시간 이상의 대기에 진을 뺐었다. 진료받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 우리나라가 저출생 국가가 맞나 싶었다. 대기석 앞 화면에는 의사 선생님 이름이 쓰여 있고 그 밑에 진료받을 분들의 이름이 접수 순서대로 뜨는데 도대체 오늘 안에 진료를 받을 수 있는지 의심이 들 때쯤 내 이름이 화면에 나타난다. 원하는 시간에 진료를 받으려면 1시간은 일찍 와서 접수를 해야 한다.


맛집도 1시간 이상 대기하면 짜증이 스멀스멀 나기 마련인데...

난임병원은 1시간이 기본이다. 이때 대기했던 시간들이 너무 지쳐서 출산 병원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정할 때는 유명하지 않은 선생님으로 선택했다. 제발 대기가 길지 않길 바라며. 오랜 기간 병원에 다닌 이들은 이 대기에 베테랑이 되어 있다. 어떤 부부는 노트북을 가져와 영화를 보더라.


진료 후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아침마다 발을 동동거리며 어두운 새벽을 잽싸게 가르고 키오스크에 접수 버튼을 누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병원 오픈 1시간 전이다. 접수를 1등으로 한 날은 (대부분 그랬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임신에 필요한 비타민D를 위해 조금이라도 햇빛이 더 닿는 대기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세상을 데우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처음에는 이런 대기 시간들이 마냥 답답하고 간호사 선생님이 내 순서가 됐는데 나를 빨리 부르지 않으면 불쑥불쑥 화가 났다.

하지만 이내 대기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채우면서 받아들였다.

언젠간 내 순서가 오겠지. 안 올 듯 하지만 반드시 오겠지. 하면서.

조바심 내며 길고 긴 대기시간을 보내면 아까운 시간이 더 아까웠다.

잠을 보충하고, 그날의 다짐을 메모장에 끄적이기도 하고, 어제 못한 일을 하기도 하면서 나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면 내 이름을 부른다.


언젠간 올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노트북으로 일을 한다.

이렇게 일상을 살아가면서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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