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에 대하여

시험관시술-첫 시작

by 김삐끗

* 이 글은 CBS 공모전 '출산은 기쁨으로, 돌봄은 다함께'에 제가 제출했던 글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새벽 5시 30분.


새벽녘 차가운 바람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조금이라도 빨리 지하철을 타기 위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한숨일지도 모를 입김에는 일찍 집을 나서는 것에 대한 피로함과 병원으로 향하는 답답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출근 시간에 늦지 않게 가려면 서둘러야 했다. 인기가 많아 대기가 긴 난임병원의 번호표를 조금이나마 앞 번호로 뽑아야 한다는 임무를 움켜쥐고 재빠르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이렇게 새벽잠을 깨우며 난임 병원을 처음 찾은 건 1년 전이었다.


당연함으로 살아왔었다. 재수를 하지 않고 당연히 대학에 갔고,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지금의 남편과 연애의 끝으로 당연히 결혼을 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던 해에 우리는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당연히 생길 줄 알았던 아이는 1년이 넘도록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내가 난임이라니.

무수히 많은 난임 부부들이 있다지만 그게 우리라니.

세 차례의 인공수정에도 우리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병원에서는 시험관 시술이라는 다음 단계의 난임 시술을 제안했다. 선뜻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인생의 선택들이 다소 당연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앞뒤 잴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삶이었다. 그렇게 흘러오던 삶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그때는 무척이나 힘들었고, 조금만 더 자연임신을 시도해 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인터넷 후기들을 찾아보며 시험관 시술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렇게 시험관 여정이 시작됐다.


병원에서 진료를 마치고 출근하는 길은 마음이 어려울 때가 많았다. 주사를 맞아 몸이 힘들 때도 있고, 조마조마한 진료 결과를 듣고 갈 때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 내 배에 찔러 넣어야 하는 수많은 주사들을 쇼핑백 가득 들고 ‘이번 주사는 덜 아팠으면 좋겠다' 따위의 생각들을 하며 출근 시간에 지각하지 않도록 종종걸음을 치며 가장 빨리 환승할 수 있는 탑승구로 향했다. 어떤 날은 임산부석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한 칸만 옆으로 앉고 싶을 뿐인데 한 칸이 이렇게나 힘이 드는구나' 하는 마음에 괜히 울컥할 때도 있었다.


시험관 시술을 진행하는 동안 아이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진짜 아이를 원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사실 난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 한 몸 살아내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한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보호해 주어야 하는 부모가 되는 것은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힘들게 아이를 가져야 하는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키워낼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가?'

'양육자로서 경제적 준비가 되었는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무수히 많은 질문들을 남편과, 또 스스로에게 하면서 당연히 계획대로 아이가 생겼다면 하지 않았을, 아니 했더라도 아이를 키우며 몰아닥치는 육아의 물결 속에서 스치듯 떠올랐을 질문들을 깊이 있게 해 보았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휴가를 낸 어느 날이었다. 날이 더욱 추워지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할 때마다 따뜻한 탕에 몸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절실해졌다. 남편과 함께 신나게 동네 찜질방으로 달려갔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은 어쩔 수 없이 아이들 위주로 찜질방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피로를 풀러 오는 찜질방에서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를 신경 쓰느라 다소 피곤해 보이셨다.


목욕을 마치고 탈의실에서 사물함에 넣은 옷을 하나 둘 입고 있었다. 옆에 남자 아이랑 그 아이의 엄마가 마찬가지로 옷을 입고 있었는데 아이는 무엇에 뿔이 났는지 계속해서 찡찡거렸다. 아이의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 이것만 하고 나가자"라고 하며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울음 섞인 목소리로 계속해서 엄마에게 떼를 쓰는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내 아이가 아닌데도 한숨이 푹 쉬어졌다. 아이의 엄마는 체념한 목소리로 립스틱을 대충 입술에 문지르며 말했다.


"엄마, 입술만 바르고 나가자"


그때 아이가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예뻐"


순간 이제까지 아이의 생떼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이의 엄마는 사랑스럽다는 미소와 함께 "고마워"라고 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탈의실을 나갔다. 입가에는 미소가,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저 아이의 귀여운 말이었다고 넘기기에는 왜 나는 눈물까지 흘리는가. 나는, 아이를 갖고 싶어서 인공수정도 3번이나 했고 2년 간 배란테스트기를 옆에 끼고 있으면서 희미하게 나타나는 줄에 온통 신경을 쓰고 살았다. 아이에 대한 소망이 꽤 컸는데도 이제까지 한 번도 아이를 키운 분들이 진심으로 부럽진 않았다. 그런데 실컷 생떼를 부리던 아이가 엄마에게 예쁘다는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있는 생활이 갑자기 눈앞에 펼쳐졌다.


세상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내 세상이 아이로 가득 찬다.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하고, 하지 않던 일들을 하게 된다. 힘들고 피곤하지만 나를 사랑하는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 엄마와 아이의 관계는 사회에서 맺어지는 어떤 관계와도 같을 수 없다. 희생하지만 희생인지 모르는 수많은 행동을 기꺼이 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내가 진정으로 아이를 원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봤다. 남들 다 있으니까, 그게 보통의 가정이니까, 당연한 일이니까. 이런 생각들에 박혀 있어 진짜 내 마음을 들여다볼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지 않았었구나. 세상이 달라지는 내 아이라는 존재. 나는 그날 내가 진짜 아이와 함께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