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고, 조용하다.
하지만 방향은 정확했다.
그들은 따라오고 있었다.
백준기의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았다.
휴대폰도 꺼졌고, 통신 기록도 불규칙했다.
그러나 그의 발자국은 하루 이틀의 시차를 두고,
그들에 의해 차곡차곡 밟히고 있었다.
추격은 즉각적이지 않았다.
급한 기색은 없었고,
오히려 확신에 찬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정보가 새고 있다는 느낌.
아무리 감춰도,
흐름이라는 건 결국 어딘가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나는 그 감각을 익히 알고 있었다.
동시에 미국 쪽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식 채널은 아니지만,
중국의 내부적 이상 움직임을 감지했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놓치지 않았던 건
비트코인의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흐름’이었다.
백준기의 지갑은 거래소가 관리하는 형태가 아니다.
지갑 주소만 블록체인에 남아 있는,
오래전에 사라졌던 것.
중국을 감시하던 중 간접적으로 발견된 그 흔적이,
지금 전 세계 정보망을 흔들고 있다.
그가 가진 건 단순한 돈이 아니다.
구조의 균형을 바꿀 수 있는 자산이다.
그걸 쫓는 건 돈 때문이 아니라,
통제권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다시 연락을 취했다.
신촌 원룸,
철문 뒤의 침묵 속에서 그는 한참을 나를 바라보았다.
경계와 피로, 불신과 약간의 체념이 동시에 서려 있었다.
“준기 씨.
이젠 나를 믿어줘야 합니다.
그 쪽을 지킬 사람, 지금은 저밖에 없습니다.”
한참 말이 없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그 중 일부는… 설득이 아닌, 정리를 택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이어 말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정보는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안전은—내 책임입니다.
그러니, 함께 움직입시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대에 앉았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낡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오랜만에 켜진 그 화면 속,
메시지 알림이 연달아 터졌다.
이름을 아는 사람들,
잊고 있던 번호들,
가족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연락을 했네요.”
그는 조용히 말했다.
그 말은 혼잣말이기도 했고,
결정의 신호이기도 했다.
“혼자는… 이제 좀 힘들 것 같아요.”
나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습니다.
그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부터,
이 작전은 방어가 아니라 탈출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부터 진짜 추적자들을 피해 움직여야 한다.
그들의 목적은 파악했고,
이제 남은 건 하나—
다음 이동을 우리가 먼저 결정하는 것.
**
밖은 아직 고요했다.
그러나 고요한 공기 속엔
이미 누군가의 발소리가 섞여 있었다.
이제는 한 걸음이 늦으면,
끝이다.
18. 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