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노출됐다는 직감은 언제나 가장 먼저, 침묵에서 시작된다.
남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정보가 새고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배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흔적만 남기고,
중간 지점에서 체류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중국 요원들이라면 반응할 법도 했다.
특히 VIP가 함께 있다는 정황이 어느 정도 드러났다면,
추적의 방향 전환이 감지돼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정보가 새고 있다는, 더 강한 징후였다.
내부엔 누가 없다.
정보사는 백업 요원 두 명을 비밀리에 배치했다.
각자 따로 움직이고, 나 역시 그들과 서로를 모른다.
오직 문자로, 단어 몇 개만 오가는 방식.
어디까지나 ‘참조’일 뿐, 명령도 보고도 없다.
이 구조 자체가,
우리가 서로를 의심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누구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결국,
밤이 깊어질 무렵 우리는 도보 이동을 택했다.
수 킬로미터를 걸어 나갔고,
이튿날 새벽에 맞춰 택시를 타고 다시 원점으로 복귀했다.
그러자,
그날 밤의 동선을 따라 정확히 추적해 들어온 기척이 감지됐다.
CCTV.
도보 구간이던, 택시 이동이던
경로 상의 감시 카메라를 누군가가 조율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
단정할 수는 없지만,
관제센터 혹은 그 내부 영상 유출 루트가 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단지 영상을 보는 게 아니다.
누군가는 객체를 인식하고, 인물의 경로를 분석하고 있었다.
미국 쪽에서도 연락이 왔다.
내게 직접은 아니었다.
정식 채널로도 아니었다.
하지만, ‘백준기의 동태에 대한 문의가 있었다’는 말이 돌았다.
그들도 중국의 움직임을 감지했고,
1백만 개 비트코인의 실체를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날 밤, 안가로 돌아와
백준기와 대화를 나눴다.
“CCTV가… 문제일 수 있어요.”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객체 인식 기반 추적이면,
정확히 얼굴, 걸음걸이, 체형, 의복까지 다 분석될 수 있어요.
중국은 그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죠.
실시간으로도 가능합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경찰청 내부에서? 정보가 샌다고 생각하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내부가 아니라,
영상이 외부로 유출되는 구조가 있을 수 있어요.
만약 CCTV 기기 자체가 중국제라면,
복제 스트림이 생성돼서 다른 서버로 전송될 가능성도 있어요.
그 기술,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말은 설득력 있었고,
무언가 구체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걸 알고 있나.”
그는 나를 피하지 않고 바라봤다.
“군대에서 전산병이었어요.
정확히는… 전산병은 아니었고,
운전병으로 배치됐는데,
부대에서 자체적으로 전산실 꾸리면서 일도 겸하게 됐습니다.”
“제대 후엔 보안 관련 회사 다녔고요.
지금도 비공개 포럼 운영 중이에요.
IT 보안 커뮤니티에선 어느 정도 알려져 있죠.”
그는 담담했다.
숨기지도, 과장하지도 않았다.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단순한 민간인이 아닐 수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가 이 사람을 ‘지나가게’ 만든 게 아닐까.
수백, 수천 개의 계좌가 있었을 텐데,
하필 이 사람에게 흘러든 코인.
우연이라고 보기엔,
너무 정교한 흔적이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앉아,
그의 눈빛을 다시 확인했다.
그건
어딘가 알고 있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정보를 결에 따라 정리하고,
말보다 먼저 판단하는 눈.
이 남자,
정말로 ‘선택된 사람’이 아니라,
‘의도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 사건은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지독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19. 추격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