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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 힘듦이 사치스러웠다.

별이 되어 선물해 준 엄마라는 이름

by 최고담 Mar 12. 2025


요즘 친구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어릴 때는 고정관념처럼 당연한 수순이 있었다.


어른이 되면 취직을 하고 어느 정도 혼기가 차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임신과 출산 육아가 힘든 일일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누구나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너무나 당연하게 하고 있으니까.


처음엔 조리원에 아이가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앗싸는 대체로 순했고, 자잘한 이슈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기에 걱정은 했지만 잘 넘어갔다.


육아종, 설소대 같은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 그리 크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기준이 달라진 걸 깨닫지 못했다. 초보 엄마가 당황할 법한 일이었음에도


‘이런 걸로 죽는 건 아니잖아 괜찮아’ 라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기본 값이 죽음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슬픈 기준이란 생각을 한다.


어찌 됐든, 앗싸의 빨갛던 얼굴은 금세 살이 오르며 뽀얗게 차올랐다.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었고 이 모든 게 내가 바라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그 힘듦이 너무 사치스럽다 생각이 들 때 한없이 무너졌다.


어째서 왜 아무도 이런 걸 이야기해 주지 않은 걸까. 임신과 출산이 끝이 아니라고 육아는 너무나 힘들다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고집스럽게 모유를 먹이려고 노력하지 말걸. ’하고 후회가 된다.


자연분만을 못해서 모유라도 먹여야 한다는 이상한 사명감에 조리도 못하고 나 자신을 몰아세웠다.


직수로 물리는 게 어려워 유축도 하고 직수도 물려보고 그것도 모자라 하면 분유도 타야 했다.


애 보는 것도 처음이라 버벅거리는데 아기 밥때가 되면


직수해 보려다 안되면

유축해 둔 걸 중탕하고

양이 모자라 하면 분유를 타고

그렇게 애가 잠들면 젖이 불어 유축을 해둬야 또 먹일 수 있으니 유축했다.


게다가 아이가 집에 돌아와 밤낮이 바뀌어 밤이면 울고 낮에 잠을 자니 다른 집 민폐를 안 끼치려면,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남편이 출근하려면 아이를 안고 밤새 집 안을 돌며 서성 거려야 했다.


살면서 잠이 많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는데, 사람이 잠을 못 잔다는 건 뇌를 갉아먹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된 것이다.


앗싸는 잠투정이 너무 심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자니 점점 사람이 날카로워졌고, 밤낮이 바뀌니 누군가와 마주칠 일도 줄어들었다.


결국은 간수치가 올라, 모유를 끊고 분유를 먹이게 되면서 괜한 죄책감은 더 커져갔다.


아기는 건강하게 와줬는데, 나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는 중압감을 가졌다.


거기에 이따금 소식이 궁금하던 친구들 인스타를 들어가서 보고 있으면, 현실이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온 세상이 아기가 중심이 되는 일은 기쁘면서도 쓸쓸했다. 보란 듯이 괜찮아야 했다. 괜찮다고 말해야 했다.


이게 나의 강박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꽤 오래 걸렸다.


그동안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황이 힘들어서 내가 열심히 하면 바뀌는 상황을 가지고 싶었는데..


지금은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서 버겁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안 괜찮아도 되는데.. 왜 그랬을까..


주변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몸 깊숙이 배어있는 눈치 보는 습관 때문에 그저 그렇게 또 나는 뒷전이었다.




백일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점 수면 패턴이 맞춰져 가고, 아기도 나도 점점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


자고 일어나 옆을 보면 아이가 자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이윽고 엄마로의 첫 이벤트 영유아검진 시즌이 돌아왔다. 아이가 건강하다 믿고 있지만,


‘혹시나 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러다 또 내 곁을 떠나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커다란 껌처럼 들러붙어 쉽사리 떼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다니던 소아과에서 받는 영유아 검진이 잘 봐주시기로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만큼 접수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접수하는 날 병원에 전화를 걸기 위해 비장하게 앉아서 9시 땡 하자마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첫 시도는 거의 200통을 걸어도 동시에 걸려오는 전화에 연결조차 되지 않고 실패해서 포기.


그러다, 다음 시도에 집요한 노력 끝에 성공했다.


그리고 대망의 영유아 검진날. 마음을 굳게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전화를 한 보람이 있을 정도로 선생님이 아이와 눈을 맞춰주고 기본적인 검사에 아이와 놀이처럼 봐주시며 이야기를 나눠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검사 후 선생님이 내 눈을 보며 말씀하셨다.


ㅇㅇ 는 아주 건강해.
놀이하면서 보이는 반응도 좋고,

잘 키웠네 고생했어요 엄마


그 한마디에 툭 마음이 놓였다. 연신 감사합니다. 인사를 했다.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거리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


아이를 안고 엉엉 울며 걸어오던 그 길이 아직도 떠오른다. 우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아이는 이내 모른 척해주려는 듯 내 몸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내 아이가 건강하다는 것. 엄마가 없이 자란 내가 좋은 엄마까진 아니어도 괜찮은 엄마라는 사실에 터져 나오는 눈물은 집에 돌아올 때까지 마르지 않았다.


이제 내 아이는 정말 건강하다. 괜찮다.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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