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4부 투명한 선 l <시선의 틀>
밖으로 나가면
같은 하루도 다른 이름으로 불립니다.
누군가는 내 표정을 “단단함”으로,
누군가는 “괜찮은 척”으로,
또 누군가는 그저 “바쁜 사람”으로 읽겠지요.
나는 그 해석들을 막지 않습니다.
다만, 내 쪽의 틀을 잃지 않으려 합니다.
오늘은 바깥의 시선 속에서도
내 하루를 ‘내가 고른 각도’로 다시 거는 법,
그 조용한 프레이밍을 적어둡니다.
<시선의 틀>
같은 장면이
바깥에선
자꾸 다른 뜻이 된다.
형광등 아래
나는 한 번 더 단정해지고,
누군가는 그걸 차갑다 말한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
내 어깨가 조금 내려가 있는 날,
누군가는 피곤하다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맞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바깥은 늘
빠르게 제목을 붙인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캡션을 지운다.
어떤 날은
하루가 통째로
“견뎠다”로 정리되고,
어떤 날은
“잘 버텼다”로 칭찬받고,
어떤 날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버린다.
그 셋을
같은 칸에 두지 않는다.
하루를 한 줄로 닫기엔
너무 많은 숨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내게만 보이는
작은 액자를 고쳐 건다.
모서리를 맞추고,
먼지를 털고,
빛이 걸리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같은 장면이
조금 덜 아프다.
조금 더 정확해진다.
상처는
설명으로 낫지 않고,
각도로 마른다.
나는 오늘을
불행의 증거로 걸지 않는다.
살아낸 하루로
조용히 전시한다.
그리고 안다.
빛은 늘 정면에서 오지 않고,
테두리에서
조금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가끔은
묻지 않고도
내 프레임을 건드리지 않는 시선 하나가
그 테두리 밖에서
조용히 서 있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