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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사람

봄 여름 가을 겨울 때마다 볼거리를 찾아서…

by BESTHYJ


우리 가족은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그 시기마다 피는 꽃과 관찰할 수 있는 식물이 다르기 때문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될 때쯤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봄이 되었음을 알린다. 우리 가족은 매화가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SNS를 통해 확인하고 그 명소로 향한다. 특별히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는 없지만 연례행사처럼 그때만 볼 수 있는 꽃과 식물은 무조건 보고 넘어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다. 때마다 자신의 때를 알고 피는 꽃이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지 우리는 그 부지런함에 감사하며 그들의 노력을 감상한다.


매화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봄의 꽃인 목련이 피고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벚꽃이 만개한다. 다른 꽃은 어쩌다 바쁜 일 때문에 지나칠 수 있다 하더라도 벚꽃은 또 다른 의미이다. 벚꽃을 못 본 봄은 나에게 우울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그 계절에 벚꽃을 보아야 마치 내가 인생을 잘 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할 정도다.

부산에는 벚꽃이 피는 명소를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 퇴근을 하고 나서라도 그 아름다운 광경을 놓치기 싫어 보러 가고는 했었는데 주거지를 세종으로 옮기고 나서는 마땅히 명소라고 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해서 내가 흔히 벚꽃을 볼 수 있는 장소는 출퇴근 길에 지나치게 되는 세종-오송으로 가는 구간이다. 아침에 셔틀을 타고 회사를 향하기 때문에 출근 시간에는 보통 영어방송을 들으며 잠을 자기 일쑤이지만 벚꽃이 피는 이 시기만은 그 시간도 놓치기 아까워 눈을 부릅뜨고 벚꽃이 만개한 구간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벚꽃은 피고 비가 오면 바로 떨어지고, 지속 시간이 짧아 그 짧은 일주일간의 축제를 즐겨야 한다.

벚꽃은 다 같은 색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면 하얀색에 가까운 벚꽃, 핑크색이 나는 벚꽃, 좀 더 붉은색이 나는 꽃, 겹벚꽃까지 다양하고 겹벚꽃은 경주의 불국사 앞이 명소인데 그 시기가 벚꽃이 지고 난 이후라서 벚꽃이 지고 나면 부산에 있는 가족과 내가 경주에서 만나 겹벚꽃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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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봄이 왔음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꽃이라면 유채꽃도 한몫을 한다. 노랗게 들판 가득 핀 유채를 보면 또 어김없이 봄이 왔음을 느끼게 된다. 유채꽃을 많이 보았던 명소는 부산 대저의 들판과 제주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기억에 유채가 가득했던 곳은 제주 산방산 앞이었는데 주인이 유채꽃이 가득한 곳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사진을 마음껏 찍게 하고 돈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유채꽃이 지나고 나면 철쭉의 시기가 온다. 이때는 본격적으로 무덥기 시작하는 시기로 기억된다. 철쭉은 보통 산에 많아서 이 시기에는 산을 올랐던 기억과 함께 내리쬐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있다. 철쭉도 색이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고, 한 곳에 몰려서 피어 있는 경우가 많고 강렬한 색의 꽃이 많다 보니 이쁘다는 생각보다 또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려나보다 하고 느끼게 하며 계절적 감각을 주는 꽃이라고 말하고 싶다.


철쭉과 비슷한 시기에는 장미도 피어난다. 장미는 5월에 주로 피는데 넝쿨 식물로 아치형으로 된 울타리를 덮고 있다가 피어난다. 내가 주로 장미를 목격하는 곳은 우리 회사와 외부를 구분하는 울타리에 피어난 장미이다. 울타리를 가득 덮고 있어서 장미가 피는 계절에는 정말 내가 꽃의 여왕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 아름다움을 몹시 뽐낸다. 색깔마저도 촌스러운 빨간색이 아닌 고혹적인 붉은색을 띤 장미를 많이 보게 된다.


장미의 계절이 지나고 본격적인 더위가 찾아오기 전 6월은 수국의 계절이다. 나는 벚꽃만큼이나 수국을 좋아한다. 다른 꽃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한 색깔에 청초함이 있는 수국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선사한다. 수국을 많이 관찰할 수 있는 곳은 부산의 태종대나 제주도에서였는데 요즘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조경으로 수국을 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수국도 색이 다양해 모여서 피어 있는 경우 더욱 아름다움을 발하는 것 같다.


수국을 관찰하고 나면 이제는 본격적인 여름이다. 여름에는 더워서인지 어떤 꽃을 관찰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푸르른, 푸르디푸른 숲 속의 신록을 관찰하는 것이 여름에 우리 가족이 하는 일인 것 같다. 여름은 그늘에서 무더위를 피하거나 물속에서 물놀이를 하며 그 무더운 시간을 피하는 것이 유일하게 그 시기를 견디는 방법인 것 같다.


여름이 지나고 본격적인 가을에 접어들기를 간절히 기대하지만 요즘은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우리가 기다리는 그 서늘한 가을이 늦게 찾아오는 것 같다. 가을인가 하면 또 무더운 날들이 이어져 여름과 가을의 경계로 느끼게 되는 시기가 지나야 가을이군 하고 인식하게 된다. 가을에는 단풍이 드는 것부터 시작하여 떨어지는 것까지 그 시기 전체가 계절의 변화를 급격하게 느끼게 한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여기저기 단풍 명소에서 단풍놀이를 즐기는데 그 핵심은 그 알록달록한 단풍이 떨어지는 것을 맞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알록달록했던 단풍이 수분을 모두 잃고 떨어지기 시작하면 슬슬 추운 겨울이 다가온다.


부산은 겨울에도 그렇게 춥다고 느끼지 않아서 코트를 주로 입었었는데 눈이 많이 내리는 세종으로 옮겨온 후에는 코트는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잠깐 입는 스치는 옷이 되어 버렸다. 세종의 겨울은 무조건 패딩과 함께다. 패딩 안에 핫팩을 붙여주면 추위를 좀 덜 느껴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추운 겨울에는 나무에 붙어있던 잎도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목격할 수 있다. 나만큼 추워 보이는 뼈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다. 이 겨울을 무사히 버티고 나면 또다시 매화가 피어나면서 겨울은 이제 다 갔어하며 또 다른 시작을 알려준다.


우리 가족의 1년은 계절의 변화를 느끼면서 즐겁게 지나간다. 물론 중간중간에 즐겁지 않은 일도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자연을 보며 흘려버린다. 계절의 변화는 이렇게 우리의 삶과 함께하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다. 나는 우리 가족의 습관인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고 느끼는 일을 평생 하게 될 것 같다. 그 속에서 나의 젊은 날과 중년의 어느 날, 또 노년의 어느 날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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