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꾸준하게 해요, 운동 쪼렙의 운동 걸음마 일기
내겐 배꼽시계보다 더 정확한 시계가 있다. '잠 시계'다. 평일에 퇴근을 하고 나면 8시 반만 되면 기가 막히게 잠 온다. 거의 서버 시간 수준이다. '아, 잠 와'라고 하는 순간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큰바늘은 6, 작은 바늘은 8과 9 사이에 있다. 밥을 먹지 않아도 식곤증 수준으로 잠이 오는데 그렇게 9시쯤 잠들어서 허무하게 새벽에 깬 적도 있다.
'그래, 회사 일이 너무 빡셌던 거야'라고 위로를 하긴 했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획하다 보니 더 이상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아빠가 중학생 때 '큰 일을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라며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13바퀴씩 뛰게 한 게 생각났다. 그땐 죽어도 뛰기 싫었는데 13바퀴에서 시작해서 15바퀴까지 바퀴 수를 늘려가며 뛰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때 비축한 체력으로 나는 대학생 때 3일 동안 1시간만 자고도 영어 학원 강사 알바를 해낼 수 있었다.
그때 비축해둔 체력이 이제 고갈되고, 08시 30분에 칼같이 잠이 올 때마다 중학생 때 아빠가 외치던 '체력'이 귓전을 때렸다. 그리고 인생 드라마 중 하나인 <미생>의 대사도 생각났다. 그리고 그 생각을 한 300번쯤 했을 때, 마침내 결심했다.
뛰자
집 앞 작은 공원이든, 근처 학교든 어디든 뛰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우선 나는 이렇게 마음먹었다.
1. 죽이 되든 밥이 되든 10시 ~ 10시 반 사이에는 나가자.
2. 10바퀴로 시작해서(작은 공원이라) 일주일에 1바퀴씩 늘리자.
3. 플레이리스트 노래를 적절히 섞어서 빠른 템포의 곡에는 뛰고, 작은 템포의 곡에는 빨리 걷자.
이건 현재 매우 비루한 나의 체력과, 나가기 싫어 죽겠는 나의 게으름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약속한 거였다. 그래서 지금으로부터 약 2주 전, 처음으로 뛰러 나갔다.
처음 뛰기 시작했을 때는 뭐랄까, '죽기보다 싫어!!!'라기보다는 심장 터지는 거 아닌가, 금세 질리는 거 아닌가, 뛰는 거보다 걷는 게 많은 거 아닌가 그런 걱정으로 가득했다. 뛰기 시작하니까 역시나, 그런 걱정이 날아간 건 아니었다. 너무 오랜만에 운동하려고 하니까 숨도 너무 차고, 이게 지금 7바퀴인지 8바퀴인지 헷갈려서 그냥 8바퀴로 생각해 버리고, 결국 빨리 걷기를 많이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러나 어차피 나는 드라마틱한 내 모습을 기대한 것도 아니고, 그런 부족하고 게으르고 약하디 약한 나를 받아 들이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그냥 10시만 되면 아무 생각 없이 나갔다. 노래 열심히 들으러 나간다는 마음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가니까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어떤 바퀴는 땅이 발로 올라와 달라붙듯 달리는 게 쉬웠고, 어떤 바퀴는 또 발이 너무 무거웠고, 어떤 바퀴는 희망에 차오르기도 했다. 폐 가득 밤공기로 채우고 코로 용이 숨 쉬듯 내뿜으면서 달리면 그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이렇게 뛰고 나니까 스트레칭 없이 그냥 눕는 게 찌뿌둥했다. 근력운동이고 유산소 운동이고 무산소 운동이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냥 스트레칭이 없으니까 아쉬웠다. 그래서 운동 루틴을 1개 추가했다. 계속 앉아 있는 일만 하고 뛰고 하다 보니 골반이 많이 뻐근한 느낌이 들어 골반 스트레칭을 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유튜브에서 찾다가 나 같은 운동 쪼렙이 따라 하기 좋은 골반 스트레칭 영상을 찾았다.
친절하고 차분한 설명, 적당히 골반이 펴지는(?) 그런 느낌이 드는 영상이다. 중요한 건 처음부터 다 따라 하지 않았다는 거다. 나는 나를 매우 잘 알아서 이거 다 따라 하려고 하면 질려서 못할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두 번째 동작까지만 따라 해 보고, 그다음 날에는 세 번째 동작,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마지막 동작까지. 차차 늘려갔다.
한 번 스트레칭 영상을 보고 나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저거 하나 봤더니 다른 운동 영상을 마구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 이제는 나는 뱃살 운동도 하고 싶어 졌고, 고민이었던 허벅지 운동도 하고 싶어 졌다! 역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영상을 찾았다.
보이나 저 해시태그!! '#이걸로충분'. 그렇다. 여러분도 나 같은 운동 개쪼렙, 헬린이 조차에도 못 미치는 운린이라면 적절한 영상이다. 그냥 영상 그대로 틀어놓고 차분히 따라 하면 된다. 이것도 골반 스트레칭 영상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모든 동작을 따라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동작만 따라 했다. 그리고 점차 따라 하는 동작을 늘려 갔다.
허벅지 운동은 아래 영상을 추천한다.
이 영상도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몇 개 좀 넘어갔다. 그냥 하고 싶은 동작만 따라 했다. 대신에 열심히! 그리고 따라 하는 동작을 한 개, 두 개 늘려 나갔다.
점차 하나씩 하나씩 추가해서, 이제 겨우 2주 좀 넘었지만 내 운동 순서는 1. 공원 뛰기 → 2. 골반 스트레칭 → 3. 뱃살 운동 → 4. 허벅지 운동으로 정해졌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잘하고 있다. 이 글을 다 쓰면, 나는 또 뛰러 갈 것이다. 평소에 숨쉬기 운동밖에 안 하던 내가 그나마 '운동'이라고 하는 걸 매일 하면서 느낀 건 아래와 같다.
나처럼 숨쉬기 운동만을 해왔던 사람이라면, 나는 저렇게만 해도 된다고 느꼈다. 운동이 너무 싫지만 건강상 해야 한다면,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한다면 내가 너무 지치지 않도록, 쉽게 질리지 않도록 처음에는 약간의 타협도 필요하다.
원래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보면 이 글의 내용이 웃길 수도 있다. 하찮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나는 운동을 을 쉬지 않고 있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느라 밤 10시 반에 들어온 날에도 11시에 뛰러 나갔다. 그리고 인제 생각날 때, 이렇게 운동 일기를 적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