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한 일을 즐기는 것
달리기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가고, 두 달이 되어가고 있다. 연휴 때 쉬었을 때 말고는 매일매일 꾸준히 달리고 있지만, '오히려 매일 운동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는 뉴스를 줏어보고 혼란스러운 요즘이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유지하는 것 중 제일 힘든 건 달리는 바퀴 수를 일정하게 하는 것이다. 사실 매일 운동하러 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특히 평일에는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와 집안일을 조금 하고, 저녁을 먹다 보면 금세 나갈 시간이 되어 그저 운동할 옷으로 갈아입기만 하면 그만이다. 매일 일정한 시간 나가는 것은 그저 습관이 되면 그렇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나가서 바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바퀴 수를 늘리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좀 더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서 코스를 짧게 짰던 공원은 짧은 만큼 지루해지기 마련이었고, 매일 자라는 키가 눈에 잘 보이지 않듯 매일 나가서 보는 공원의 풍경은 그날 자란 손톱 길이만큼 달라져 있을 뿐이었다. 공원의 풍경이 변화무쌍하다고 달리기가 즐거워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루하면 지루할수록 재미가 없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어떤 날, 갑자기, 그 지루하고 똑같은 풍경에서 지루하지 않게 뛸 방법을 찾았다.
아직 벚꽃이 다 지지 않았던 어느 날, 나는 뛰다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간질였기 때문이다. 대체 어디서 나는지, 어떤 꽃인지, 어떤 나무인지 궁금해서 마치 코를 꿰인 듯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누군가 어떤 향기라고 알려주었었는데, 그것이 아카시아인지 라일락인지 헷갈렸던 그 향기.
나이키 앱의 '운동을 일시 정지합니다'라는 재촉에 못 이겨 어디서 나는지 어떤 나무인지 찾지 못하고 결국 다시 뛰었지만, 공원을 한 바퀴 돌아 그 구간에 오면 그 향기가 꼭 났다.
일정한 구간에서 반드시 마주치는 그 향기. 그 향기 덕분에, 그 향기를 계속 맡고 또 맡고 싶어서 지루함을 모르고 달렸다. 물론 체력이 딸려서 달리는 내내 전력으로 달리기를 하게 하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달리던 구간에 없던 골인 지점이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계속 달릴 수 있도록 나를 끌어당겼다.
2주 정도가 지나고 낮과 밤의 기온이 한 뼘 정도 올라가자, 그 향기도 모습과 위치를 바꾸었다. 향기가 어디서 나는지 찾기 위해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고 주변의 나무를 살펴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공원이 한 주 한 주 옷을 갈아입는 것도 알게 됐다. 그저 초록빛으로만 있는 줄 알았던 공원에는 분홍색도 있고, 연보라 색도 있고, 흰 색도 있었다.
꽃 향기를 맡기 위해 달리는 것은 아니지만 매주 골인 지점을 바꿔주는 공원 덕분에 달리기가 조금 더 쉬워졌다. 그 구간에만 오면 낚싯줄에 걸려 딸려가듯 고개가 틀어지고 무대 위 조명이 바뀌듯 아주 잠깐, 기분이 달라졌다.
그 구간에만 오면 마치 오래 기다리던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워진다. 어떤 한 주는 꽃 향기가 전혀 나지 않을 때도 있는데 그러다 그다음 날이나 다다음날쯤 다시 마주하면 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없다고 해서 슬프진 않지만, 다시 마주치면 조금 달라진 모습에 더 반가웠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내가 스무 살 이후로 살면서 이렇게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꼈던 적이 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꽃 향기를 맡기 시작하면서 그동안은 그저 장마와 눈, 기온으로만 느끼던 계절을 벚꽃이 진 다음에는 어떤 꽃이 피는지, 보라색 꽃이 지고 나면 그다음 어떤 나무에서 꽃이 피고 그 꽃이 어떤 향기를 내는지까지 알게 되었다.
사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꽃향기를 맡는 것은 굉장히 무용(無用)한 일이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내일 할 일이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무용한 것들을 즐겼을 때 내 삶이 풍부해짐을 느꼈다. 그런 무용한 것들은 꼭 대단한 예술 같은 것들이 아니라 그저 출근길 버스 정류장에 있는 노란 꽃, 퇴근하는 버스 위에서 감상하는 노을, 점심시간에 마주쳤던 맑은 하늘로 충분했다.
대부분 여유로울 때 무용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가끔은 무용한 것이 눈에 들어와 여유를 찾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변함없이 똑같은 시간에 나가 무용한 것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