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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03. 2020

여섯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신선한 앤솔로지

소설집 [식스센스] 책 리뷰



1. 식스센스 : 여섯 번째 센스 혹은 여섯 가지 센스...

   원래 식스센스는 육감, 즉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감각 외 일반적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직감적으로 포착하는 심리 작용"입니다.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육감이라고 하면 다들 느낌적으로 알고 있지요. 그것이 바로 육감입니다.


   "식스센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앤솔로지는 "여섯 번째 감각이 존재하는 여섯 작가의 독특한 여섯 가지 이야기를 모은 단편집"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목과 연결을 하려다 보니 그리된 것이지요. 이 설명은 사실 오해의 소지가 제법 있습니다. 별다른 정보 없이 이 소설을 접할 때, 일반인에게는 없는 뭔가 다른 감각을 소유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SF 단편을 모은 소설이 아닐까 상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어떻게 봐도 SF 소설집은 아닙니다. 앤솔로지를 관통하는 하나의 테마, 공통분모가 '식스센스'라고 부르는 한 공간일 뿐입니다. 마치 "카페 홈즈에 가면"처럼 특정 장소가 다양한 소설 속에 공통적으로 등장한다는 설정만 공유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그렇기에 여섯 번째 감각이라는 개념을 이 소설집에 연결하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앤솔로지가 어땠는 가일 텐데, 저에게는 크게 감탄하거나, 흥분하게 만드는 단편들의 향연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개성을 가진 소설들이 하나로 묶은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각각 전혀 다른 매력이 넘치는 소설들이 하나하나 펼쳐질 때마다 대단히 짜릿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순문학에서 장르문학, 웹 소설은 물론 국내에서 소설을 처음 발표하는 기획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움이 매력적인 소설집입니다.


   이 소설은 여섯 가지 서로 다른 형태의 센스를 장착한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모둠이라는 뜻으로 "식스센스"라는 제목을 달았다고 설명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 추억 속의 여섯 개의 보석들 "젝스키스"처럼 말입니다. 




2. 센스 넘치는 작가들의 개성 만점 소설들



   사실 이 앤솔로지에 참여한 작가들 면면이 그러하듯 이렇게 묶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장르와 스타일의 소설들이 모여있습니다. SF 단편 앤솔로지로 생각하고 읽었던 저에게는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1) 타임머신 파일럿(노희준)

   뉘신가 했더니 단편집 '어위크'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에서 이미 만나 본 작가님이셨습니다. 이번 작품은 저의 빼이보릿 로버트 하인라인옹의 [All you zombies]에서 선보인 극한의 타임 패러독스와 유사한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조해냈습니다. 이 소설은 굳이 따지면 테드 창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단편에서 잘 보여준 타임 패러독스의 '불가변역사' 입장에 서있다고 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통상 타임 패러독스를 활용하는 경우 식상해질 위험이 아주 큰데 단편임에도 노련하게 잘 마무리된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2) 다섯과 여섯(우다영)

   저는 사실 잘 몰랐던 작가님인데, 스타일이 너무 매력적이라 좀 찾아보니 업계에서 스타일로 나름 유명하신 분입니다. '역시 우다영은 우다영이다'라는 평이 눈에 들어왔는데, 저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콘스탄틴의 설정이 떠오르는 묘한 판타지가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 중간에 공간을 설명하는 긴 문장이 나오는데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하루키옹의 문장이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어서 감탄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이분의 문장이 만년체인데 매우 반갑고 좋았습니다. 


3) 식스센스 다이닝 바(정재희)

   동명이인이 많아 도무지 정보를 찾을 수 없는 분이셨는데, 조금 찾아보니 소설가는 아니시고 공연, 전시 기획 등을 기본으로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셨습니다. 이 앤솔로지의 기획자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저에게 조금 난해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한 번 더 읽어야겠는데?'라고 생각하게 만든 소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작가가 더 궁금한 형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며칠 후 팟캐스트 녹음하면서 만나 뵈면 궁금증이 조금 풀릴지 모르겠습니다.


4) 벙커(정명섭)

   소설의 첫 페이지에서 '현준'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 반가움에 흥분되었습니다. 이 소설은 무려 2013년에 읽었던 작가님의 소설 "폐쇄구역 서울"의 시퀄로 볼 수 있습니다. 단편이다 보니 기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비롯한 각종 설정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생략하고 있어서 이 소설만 읽는 독자 중에는 저만큼 재미있게 읽기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너무 반가운 소설이었습니다. 


5) 우주시점(이갑수)

   이 소설은 클라크 형님의 '유년기의 끝'이 떠오르는 소설이었습니다. 제목이 열 일 하는 이 소설은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우주로 시점을 옮겼을 때 발생하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익숙함과 신선함이 잘 혼합된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뭔가 허무한 듯한 마무리의 반전도 헉 소리 나게 재미있었습니다.


6)노트르담의 변주곡(차소희)

   차소희 작가님은 엄청난 독자를 보유한 웹 소설 작가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웹툰은 자주 보지만 웹 소설을 안 읽다 보니 체감하기 어려웠는데 확실히 이 소설 속에는 웹 소설의 특징과 매력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습니다. 제가 좋아라 미치는 스타일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독자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매우 뛰어난 감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 속에 드러나는 감정선이 매우 직접적이고 강렬하다는 특징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 앤솔로지의 다채로움, 약일까? 독일까?

   이 소설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눈에 띄게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이 앤솔로지가 대중적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취향이라는 것이 제법 고집스러운 면이 이따 보니 좋아하는 장르가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심지어 매우 편협한 모습도 자주 보게 됩니다. 취향에 맞는 장르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의 변주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해 완고한 태도를 취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상당히 이질적인 성향의 작가들이 의기투합한 이 앤솔로지의 다채로움에 대해 독자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지에 대해서는 섣불리 예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여섯 편의 단편 중에 다섯 편이 좋았는데 한 편이 취향에 너무 안 맞았다고 한다면 좋았던 다섯 편보다는 취향에 안 맞았던 한편의 불만족스러웠던 부분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인간의 묘한 심리입니다. 이런 형편이다 보니 어느 누가 읽어도 각자의 취향이라는 채에 걸려 넘어가기 어려운 작품이 생길 가능성이 꽤나 높아 보입니다. 


   소설의 형식이나 장르에 대해 매우 열린 태도를 가진 독자들이거나, 별 기대 없이 읽다가 신박한 소설들을 대하면서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독자들이 많다면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아주 흡족했습니다. 이 독특한 앤솔로지가 대중에게 좋은 방향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그에 앞서 아예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가장 걱정스럽습니다. 취향에 맞을지 아닐지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으니 일단 한 번 읽어보셔서 확인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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