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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y 21. 2021

인간이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

소메이 다메히토 [정체] 책 리뷰




1. 극단적인 상황 설정,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소설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스터리 소설에서 '범인이 누군가?' 라거나 '어떻게 죽였나?' 등의 관점에서 전개되는 스토리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뭔가 퀴즈 같은 걸 풀어내는 쾌감이나 성취감이 별로 없는 저의 성향 탓입니다. 대신 사회파 미스터리를 무척 좋아합니다. '누구냐?' 보다 '왜? 어떤 환경적 요인 때문에?'가 저에게는 더 매력적입니다. 그렇지만 '범인이 누구인가?'를 완전히 무시한 소설은 긴장감이 떨어져 소설적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일가족을 처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을 선고받은 미성년 소년 사형수는 탈옥에 성공해 1년 반이 넘도록 잡히지 않고 정체를 숨긴 채 도피 행각을 이어갑니다. 한 군데 정착해 지내다가 정체가 발각될 만한 낌새가 생기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반복합니다. 정착한 곳마다 다른 이름으로 자신을 숨기고 지내는 사형수 주변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반복해 소개하며 스토리가 이어집니다. 과연 사형수의 말과 행동은 자신이 잔인한 살인마임을 속이기 위한 완벽한 연극인지, 사실은 전혀 살인을 저지를 만한 인물이 아닌지 독자가 판단해야 할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런 스토리 전개를 대하면서 독자는 마치 문제를 푸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Yes or No?'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판단할 거리인 예시를 하나하나 제시하는 것입니다. "자, 주인공이 이런 곳에서 지내다가 이러저러한 사건에 휘말리는데 요렇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독자는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하는 느낌입니다. 똑똑한 독자 중에는 금방 결론을 내리는 분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정말 알 수가 없어 정답을 유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반전이 있을 것도 같고, 주인공이 진범이 아니라 누명을 쓴 것 같기도 하여 소설 속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가늠이 안되니 계속 긴장하며 읽게 되는 것입니다. 범인이라고 가정해도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서스펜스가 누적되고, 범인이 아니라고 가정해도 그 억울함을 어떻게 풀 수 있을지 긴장감이 가득한 가운데 읽게 되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 읽어도 서스펜스가 유지되는 굉장히 잘 짜인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2. 소설이 던져주는 질문들, 선입관, 편견, 사회적 매장과 SNS의 폐해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사회적으로 고민해 봐야 할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살인자로 알려진 범죄자가 당신 주변에 가까이 있다면 어떻겠느냐?라는 질문이 크게 다가옵니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 언론, 법정에서조차 이미 살인자로 낙인찍은 소년은 신기하게도 가는 곳마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도움을 줍니다. 심지어 정서적으로 돕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는 등, 보통 사람보다 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사형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심지어 그의 정체를 눈치채고서도 믿지 못할 지경입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를 본 집단논리가 항상 옳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언론이나 SNS를 통해 불완전한 정보를 토대로 쉽사리 결론에 이르고 믿어버리는 것은 그 편이 훨씬 편하고 타인에게 그 이상 신경을 쓰기에 바쁘고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대상이 '내'가 되었을 때에 있습니다. 나 또는 내 가족, 지인이 그런 누명을 쓰면 어떨까요? 내가 알던 순한 양같이 착하기만 하던 지인이 끔찍한 범죄를 정말로 저질렀다고 한다면 어떨까요? 


   다양한 케이스를 통해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을 중첩해 던져주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체면을 위해 넘겨짚기 식으로 조사하는 경찰, 성급하게 판단해 형을 집행하려는 재판부, 흥미요소로 논란을 양산하는 언론, 정확하지도 않은 조롱이 난무하는 SNS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일상 중에 흔하게 겪을 수 있는 신중하지 못한 집단적 행동의 폐해를 고민하게 하는 흐름이 좋습니다. 소설의 스토리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 내는 필력이 돋보입니다. 


  이 소설에서 더욱 좋았던 부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소설에 등장하는 큰 사건을 둘러싼 각 주체들이 시시각각 보여주는 판단과 결정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탈옥한 사형수 주인공뿐 아니라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며 그를 겪었던 주변인들이 해야 했던 판단, 좀 더 멀리 보면 주인공을 바라보는 언론과 끝없이 뒤좇는 경찰의 입장 등이 그렇습니다. 소설을 통해 독자는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쉽게 동조하고 판단해 버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도 재미있는데 소설을 통해 자연스럽게 뭔가 배울 것도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3. 일본 범죄 미스터리 소설의 단골 소재 원죄, 그리고 독특한 시선

   일본 범죄 미스터리를 읽다 보면 유독 "원죄"라는 소재가 자주 등장합니다. 일본 소설을 많이 읽으시는 독자분들이라면 아주 익숙하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실 의아하게 여길 소재기도 합니다. 단어만 보면 원래의 죄, 오리지널 씬 같은 느낌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원죄'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죄'를 말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누명이라고 하지 누가 '원죄'라고 하겠습니까? 그렇기에 일본 미스터리에만 통용되는 단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 소설에서 원죄에 대해 다룰 때마다 생경하고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만, 장르적 특성이므로 익숙해지면 재미를 더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경찰, 검찰, 사법부의 판단 실수로 개인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흔히 있습니다만, 일본처럼 소설을 통해 이런 문제를 진지하게 반복적으로 다루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 더 무겁게 생각하는 것인지, 일본에 억울한 상황이 발생하는 빈도가 더 많은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이 문제를 더 빈번히 다루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원죄에 대해 다루는 소설은 보통 원죄를 생산해 내는 주체 쪽의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초에 죄 없는 사람에게 억지 수사를 통해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경찰 내부의 문제나 선입관과 감정적 판단으로 형을 집행하는 사법부 등이 등장합니다. 그리하여 원죄 사건이 왜 일어나는가의 관점에서 "이런 이유 때문에 이런 과정을 통해 원죄 사건을 일으키고 조직의 체면 때문에 덮으려 한다"라는 폭로의 입장으로 원죄 사건을 풀어나갑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원죄를 일으키는 주체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원죄 사건을 당한 개인의 시선에서 원죄를 바라봅니다. 이런 집단적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개인과 주변인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 어떤 고통을 받는지 등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설의 결말로 다가갈수록 이런 문제들이 긴장감을 더하며 폭발력 있는 서사로 이어집니다. 그렇기에 장르소설의 미덕인 읽는 재미도 충분히 더하면서 주제 의식을 극적으로 살린 훌륭한 소설인 것입니다. 


   소메이 다메히토의 소설 [정체]는 범인에 대한 의혹을 끝까지 버릴 수 없도록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범죄를 둘러싼 인간 군상들과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주제의식을 동시에 잘 묘사한 훌륭한 소설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긴장감 넘치는 소설적 재미는 물론 소설이 던져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이 소설은 다행히 잘 해내었고 그렇기에 매력적이고 여운이 남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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