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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y 02. 2022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휴머니즘 소설

제임스 맥브라이드 <어메이징 브루클린> 책 리뷰




1. 1960년대 미국 빈민 사회를 묘사한 흥미로운 소설

   소설 <컬러 오브 워터>, <안나 성당의 기적>, <아직 불리지 않은 노래> 등으로 유명한 제임스 맥브라이드의 신간인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1960년대 말 미국 뉴욕 빈민가를 다룬 소설입니다. 다양한 인류의 멜팅 팟이라고 불리는 미국에서 주류 백인과 유색 인종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언제나 핫이슈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가상의 빈민 마을 교회를 중심으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유려하게 뽑아낸 소설입니다.


   유색인종이라 통칭되는 비주류 인종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보니 인종 차별, 가난, 마약, 범죄, 총기 소지 등의 문제를 떠올리는 장치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국내 독자들이 깊은 관심을 기울이기 힘든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번 책을 펼치기 시작하면 나와 큰 상관이 없어 보이는 그 시대 브루클린 빈민가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됩니다.


   70대 술주정뱅이 노인 쿠피 램킨(킹콩집사, 스포츠코트 등으로 불리는)이 등장해 19살 어린 마약 판매상 딤즈를 총으로 저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첫 장면이 총격 신이니 엄청난 범죄 누아르 소설로 흘러갈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사건은 빈민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방아쇠 역할을 할 뿐입니다. 덕분에 독자는 관련된 인물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하게 됩니다.


   저격 사건으로 당사자인 딤즈와 스포츠 코트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마약 사업을 둘러싼 조직 간 이권 문제로 이어지면 긴장감을 높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마약 조직 간 알력 다툼으로 흘러가지만 실제로는 빈민가에 흘러든 마약 때문에 흐트러지는 마을 공동체의 문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모르게 매달 배달되어 오는 고급 치즈 미스터리와 고가의 골동품이 숨겨진 비밀을 풀어내려는 미스터리까지 엮여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소설의 전개에 따라 다양한 인물들이 소개되고 이들이 떠들고 다투고 화해하며 살아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미국 사회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어느 한사람 평범한 사람이 없고,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사 언제 어디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훌륭한 소설입니다.



2.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는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

   <어메이징 브루클린>에는 정말 다양한 사회문제가 등장합니다. 미국 사회 문제의 근간을 이루는 흑인 인종차별 문제는 익숙한 주제입니다. 총격 사건 이후 투입되는 백인 형사와 흑인 부인 간에 관계는 넘어설 수 없는 백인과 흑인 간의 간극을 극적으로 보여 줍니다. 이 미묘한 관계는 소설의 마지막까지도 이어지는데 소설의 긴장감에 독자의 정서적 반응까지 이끌어내는 훌륭한 한 축을 담당합니다.


   유색인종이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소수 이민족의 문제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서로 공간적으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교류하지 않는 이탈리안과 흑인들의 모습만으로도 인종 문제가 단순히 주류 백인들과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백인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구체적으로 다뤄지지도 않습니다. 그 와중에도 파이브 핸즈 교회가 설립되고 유지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과거 이야기를 통해 무조건 적대적인 관계로만 정의할 수도 없는 복합적인 문제라는 점을 깨닫게 합니다.


   남녀 불평등은 시대적으로 거의 기본 옵션처럼 보입니다만, 이 소설에서 크게 부각되는 지점은 아닙니다. 총기 소지 역시 본격적으로 문제 삼거나 이야기의 소재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마약의 문제만큼은 매우 진중하게 다뤄지고 있습니다. 소설 전반의 배경을 좌우하는 핵심도 "마약"과 그 조직 이야기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 소설의 다분히 소설적인 요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심각한 총기 발사 문제에 있어서 즉각적인 반응이나 경찰의 대응이 비현실적으로 지지부진하게 전개됩니다. 누구 하나 본격적으로 해결하러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당히 넘어가다 더 큰 사건으로 이어지기까지 합니다. 사건 당사자, 주변인, 경찰, 피해자, 주변 조직 모두 소설적이고도 기묘하게 아이디얼 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사건의 해결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하는 핵심과 직접 관련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건보다 사회 전반적인 모습에 주목해 주기를 원하는 작가의 의도로 볼 수 있겠습니다. 덕분에 미스터리로 길을 잃지 않고 각 캐릭터에 관심을 집중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소설로 인해 그동안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미국 사회의 인권, 이웃 공동체, 다민족 사회, 마약 문제 등에 대해 찬찬히 살펴보는 무척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재의 미국 사회와 당시 미국 사회의 차이는 물론 한국 사회와의 차이도 자연스럽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유익했습니다.



3. 익살스러운 유머를 놓치지 않는 휴머니즘 소설

   500페이지에 달하는 장편 소설인 이 작품을 너무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소설 속에서 유머와 휴머니즘을 놓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반부에 분위기를 잡는 데 있어 주인공의 삶과 사건사고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억지웃음이 아니라 약간 어이없는 웃음을 짓게 만들기 때문에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내용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주인공의 척박하고 기구한 인생사는 물론 이럴 수 있을까 싶은 등장인물들의 특징적인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캐릭터를 형성하고 그들을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매력이 됩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이 소설에는 악역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물론 주변 인물 누구도 완벽하게 악하지 않고 하나같이 약하고 고민 많고 살아남기 위해 고투하는 인물들입니다.


   작가는 어떤 인물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아무리 불법을 저지르는 갱단 두목이라도 나름의 고민이 있고, 두려움이 있고 걱정이 있습니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삶의 애환이 이 소설을 더 빛나게 합니다. 그 누구도 일방적이거나 처단해야 할 악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사람들이 얽혀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척 동화적이고 시트콤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읽다 보면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지는 장면들이 은근 많습니다. 이게 뭔가 부럽거나 대단한 인물이 하나도 없는데도 그들의 삶이 구차하거나 보기 싫지 않고 밉지 않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에 가까운데도 약간의 거리를 두고 관찰하면 이런 희극도 없습니다. 이런 방식의 전개가 작가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포츠 코트(집사 킹콩)의 일생이 아무래도 메인 스토리가 되겠습니다만, 주변 인물들의 삶과 인생도 깨알같이 놓치지 않고 살뜰하게 생기는 작가의 태도는 소설을 대하는 애정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시작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묘하게도 은근한 감동이 끊이지 않는 신기한 소설입니다. 오랜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고 의미 있게 읽은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분량이 제법 많지만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인간의 기본에 대한 중요한 부분을 놓치지 않는 휴머니즘과 유머 넘치는 소설을 기대하시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매우 흡족한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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