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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Oct 05. 2023

산 자와 죽은 망자가 만난다면

츠지무라 미즈키 소설 <사자 츠나구1> 책 리뷰





1. 한국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신선한 설정이 흥미로운 소설

일본 저자 츠지무라 미즈키의 <사자 츠나구1>는 살아있는 사람과 이미 죽은 사람이 하룻밤 동안 만남을 가진다는 설정이 기본 토대인 소설입니다. 어찌 보면 식상한 느낌을 받기 좋은 설정입니다만, 다행히 설정을 매우 잘 활용한 수작입니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죽은 사람이나 귀신, 악귀 등을 상당히 다양하게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한국인들은 좀 더 현실적이라 그런지, 치열한 현실의 삶이 여유가 없어서인지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덜 한 것 같습니다.


한국인에게 이런 식의 설정은 다소 생소하기도 하고 무관심한 영역일 수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소설의 설정이 먹히느냐인데, 만약 이 소설을 독자들이 선택하기만 한다면 상당히 즐겁게 즐길 만하다는 판단이 듭니다. 독자가 소설에 쉽게 빠져들 수 있도록 적절히 설계가 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의 생소함이 흥미로, 흥미가 재미로 바뀐 과정이 꽤나 즐거웠습니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잘 안 읽는 이유는 소설 상의 설정을 이해하고 소설의 세계에 빠져드는 데까지 어려움을 많이 겪는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시작부터 제목인 <사자 츠나구>가 바로 등장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려주고 시작합니다. 일단 의문을 해결하고 이야기에 접근할 수 있는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쉽게 읽을 수 있는 배려가 눈에 띄는 소설입니다.


사자(使者)는 사전적으로 "어떤 사명을 맡아서 심부름을 하는 사람" 또는 "죽은 사람의 혼을 저승으로 잡아가는 일을 맡았다는 저승의 귀신"이라고 합니다만, 이 소설에서는 정확히 첫 번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명은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서 연락하고 죽은 사람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에 대해 의뢰를 하면 죽은 사람에게 의사를 묻고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중개하는 역할을 말합니다.


이게 무작정 일어나면 죽음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아무런 이야깃거리가 될 수가 없다 보니 "살아있는 동안 단 한 번, 죽음 이후에도 단 한 번 한 명만 만날 수 있다"라는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이 제한이 소설의 긴장감을 주는 좋은 장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사는 동안 단 한차례만 쓸 수 있는 기회라면 신중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설정과 조건 만으로도 흥미를 유발하는 좋은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2. 인류 공통의 감정을 잘 터치한 적절한 균형미가 돋보이는 소설

사자 츠나구가 등장하는 이야기라면 사연을 품은 산 사람과 뭔가 감춰진 사연이 있는 망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야만 하는 사연과 만나서 해결되는 과정이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해야 합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상당히 신중하게 처리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무난하고 만만하게 자신과 다소 거리가 있는 망자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왜 이 사람이랑 그 사람이 한 번뿐인 기회를 이렇게 쓴단 말인가?' 싶게 시작하는데, 한 챕터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첫 에피소드를 비교적 무난하게 시작하면서 이 소설 속 사자 츠나구의 존재, 만남이 이루어지는 과정, 그 속에 알아야 할 더 디테일한 규칙 등을 자연스럽게 설명합니다. 다음 에피소드로 들어가면 좀 더 본격적으로 등장인물 간의 이야기와 그들의 감정 문제를 깊이 터치합니다. 에피소드가 진행될수록 독자는 이 형식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는 만큼 저자는 캐릭터의 감정과 민감한 부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기 용이합니다. 저자의 이런 구성이 상당히 세련되고 유효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의 후반부로 넘어감에 따라 단순 에피소드들이 나열되는 형태가 아니라 사자 츠나구 자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을 이어왔는지에 대해 점점 풀어냅니다. 왜 사자 츠나구가 어린 학생인지에 대해서도 기술됩니다. 이 과정에서 츠나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단지 비밀을 품은 신비한 인물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똑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사자 츠나구의 개인적인 스토리와 이 일을 해나가는 과정, 그 가운데 느끼는 다양한 감정과 입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이 소설에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맡았다면 타인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이 일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했을까?', '나는 망자와 살아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등의 생각을 하는 와중에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는 이 소설을 즐겁게 읽는 아주 훌륭한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과정에서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뿐 아니라 사자 츠나구 당사자와 전대 츠나구인 할머니, 그리고 사고를 당했던 부모님과의 스토리 등이 섬세하게 이어지는데, 누구라도 공감할 만한 감정적인 부분을 매우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정서와 다소 차이가 있는 소설 속 정서의 문제도 그게 비단 일본인들의 통상적인 사고방식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독자에게 생각할 문제로 작용하는 것도 장점입니다. 저자는 지나치게 신파로 빠지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상당히 잘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감정적 체험을 하기 좋도록 균형미 좋은 글을 써내고 있습니다.


신선하고 새로우면서 이국적이기도 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돋보이는 이 소설은, 일본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즐겁게 읽으시리라 예상됩니다. 일본 소설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저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만큼 인류 공통의 감정을 잘 건드린 이 소설은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위로와 감정의 정화를 느끼기 좋은 수준 높은 소설입니다. 금방 읽으실 수 있으니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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