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야 이거 내 탓이냐? 네 탓이야?
"날씨가 개 좋구나..."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게 됩니다. '아웅 날씨가 좋아서 너무 행복해...'라는 느낌이라면 더없이 좋겠지만 사실은 '아 이런 닉임이 된장, 아침에 콧물이 나오길래 드디어 환절기인가 싶어 긴팔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 날씨는 좋고 해가 뜨겁고 난리야...'라는 느낌이라 안습..
안습도 기온이 올라가니 에어컨을 켜주지 않는 도서관에 앉아 코를 훌쩍이는데 뭔가 덥고 답답해 땀이 차며 머리통 쪽으로 차오르는 열기에 의해 형성된 습기가 안경을 통해 드러나는 과학적 현상이라면 마음까지 슬퍼집니다.
게다가 아래쪽만 살짝 열리는 도서관 창문이라는 놈이 '가뭄에 콩 나듯 가끔 불어 드는 바람 샘플이 첫 사귐의 간 보기와 밀당처럼' 찰나의 시원함을 맛보기로 살짝만 느끼게 해줍니다. 어쩌다 한번 찾아오는 이 바람은 시원함보다 '아, 내가 덥도다.... 매우 덥도다...'하는 마음의 외침을 확인하는 자학적 요소에 지나지 않습니다.
급기야 이런 고민이 듭니다. '긴팔 티를 벗을까? 일교차가 심한 지구 대기 환경을 탓하며 벗어재껴버릴까?' 그러나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긴팔 티 안에는 누가 봐도 민망해할 하얀색 아저씨 난닝구가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푸어(아니 퓨어) 하고 알흠다운 영혼의 소유자인 저라 하더라도 환경에 나쁜 표백제는 쓰지 말자는 거룩한 생각 때문에 표백제 없이 그냥 빨았다가 겨드랑이 주변만 약 노란색으로 변해버린 아저씨 난닝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낸 체 거지꼴을 하고 앉아 있는 것은 멘탈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달리 방법이 없이 열만 받은 저는 책 읽기를 포기하고 이렇게 앉아서 쓸데없는 글을 쓰며 누구 탓도 못하고 투덜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와중에 뭔가 억울합니다. '어젯밤부터 아침까지는 분명히 추웠단 말이다. 씻을 때 나오는 콧물과 잔털에서 느껴지는 한기를 똑똑히 느끼지 않았더냐!!!'라며 저의 선택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어디다 말은 못 하겠지만요. 이러면서 얼핏 주변을 둘러보니 이런 된장. 다들 반팔이야... 뭔가 심하게 배신당한 기분이야... 오홋. 저어기 머리 벗어지신 어르신은 긴팔! 그것도 두꺼워 보이는 등산복.... 하아.. 이거 좋아해야 하나...
이 상황은 내 탓입니까? 네 탓입니까? 지구 이 자식 너 말이야!! 갈수록 건방지게 아름다운 사계절을 무시하고 극단적이 돼가는 너 말입니다!!!
(이거 의외로 무척 덥군. 방안 효과가 좋은 청소재야... 오늘에서야 처음 느낌. 저어기 구석에 휴지는 콧물 분비 현상의 잔재.. 아니 증거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