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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Oct 17. 2019

발다치 최고의 범죄 스럴러 소설

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책리뷰

1. 발다치 최고의 히트 상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의 절정


   이 시리즈를 애정 하는 독자들에게는 이제 익숙한 과잉기억 증후군을 가진 주인공 에이머스 데커는 확실히 범죄 미스터리 소설 주인공으로 최적의 조건을 가진 캐릭터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복잡한 사건을 설계해도 여기저기 조사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얻은 실마리를 놀랍도록 엮어내도 '음... 모든 것을 기억하는 기억력이라면 저럴 수 있지...'하고 납득하게 되는 거니까요. 그렇기에 도대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져도 답답하기보단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기대하며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인 "폴른 : 저주받은 자들의 도시"는 단연코 시리즈 중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소설이 잘 안 읽히는 상황에서도 푹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발다치의 소설이 기본적으로 훌륭하지만 이 작품은 범죄소설에서 기대할 수 있는 재미뿐만 아니라 시대적, 사회적 상황을 읽을 수 있고, 세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과 흥망성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에 더욱 좋았습니다.


   기존 시리즈를 통해 완성된 FBI 팀을 활용하지 않고, 미묘한 애정관계를 형성하고 있던 동료 재미슨과 둘만으로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도 쇠락한 시골 소도시 '배런 빌'이라는 곳이고 이곳에 간 이유도 단순 휴가입니다. 사실 기존 팀이 모두 투입되고 FBI의 정보력이 총동원돼서 지정된 사건을 해결하는 설정이라면 막막하게 하나 둘 단서를 쫓아가는 모양새가 나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처럼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범죄가 일어나는 설정이 공교롭기는 합니다. 범죄를 달고 다녀요. 그저 동네 주민도 얼마 없는 시골에 왔을 뿐인데 바로 옆집에서 두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되니 말입니다. 항상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하던 코난처럼요. 그것도 소설이 시작하자마자 벌어집니다. '아... 또냐?'라고 할 만도 한데 워낙 시작부터 스토리가 몰아치니 그럴 틈도 없이 계속 읽어나가게 됩니다. 흡입력과 가독성이 뛰어나니까요.





2. 주인공 캐릭터의 변화가 돋보이는 소설


   시리즈 네 번째에 이르러 작가는 너무나 완벽한 능력을 가진 주인공에게 약간의 핸디캡을 부여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익숙해진 독자들이 소설을 읽는 동안 긴장감이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완벽한 기억력으로 어차피 좌충우돌하다가 호로록 풀어버릴 거라는 생각을 갖게 되니까요. 그래서 초반에 주인공이 머리를 다치게 하고 이로 인해 기존 능력에 불완전한 요소를 부여합니다. 미치도록 현명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자인 제 입장에서는 소설을 무척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만들었으니까요. 이 작은 설정 하나만으로 소설의 긴장감이 극적으로 높아졌습니다. 


   게다가 완벽한 기억력에 균열이 오면서 동시에 정서적인 부분에서까지 변화가 옵니다. 기존에는 사회성이 너무 떨어지는 소시오패스 같은 모습을 계속 보였는데, 점점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 변화의 정도나 타이밍이 자연스럽고 좋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캐릭터의 변화를 바라보는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감했습니다. '드디어 인간이 되고 있군.'이라며 마냥 좋아하는 마음만 들었으면 좋겠는데, 마음 한편에서는 그냥 캐릭터 확실하고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삐딱한 히어로의 모습을 유지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해 이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것도 작가의 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이를 대하는 데커의 모습은 놀라운 발전을 이루는데, 이 과정에서 아내와 딸의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성숙한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미묘한 관계에 있는 재미슨과의 의사소통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둘의 관계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매 시리즈마다 매력적인 캐릭터를 추가해 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한마을을 쥐락펴락하던 지역 최고의 부자 가문의 몰락한 후손을 내세웁니다. 범상치 않은 신비로운 매력을 지닌 배런가의 마지막 남은 1인인 "존 배런"은 억울할 법한 상황을 겪어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전형적인 인물입니다. 이 전 시리즈에 비해 상당히 평범한 캐릭터라는 느낌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강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후에 주인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든든한 아군이 될 여지를 남기게 됩니다.





3. 사회적 변화와 그 속의 인간 군상을 적나라하게 그린 소설


   흉악한 범죄가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이 사건 사이에서 복잡하게 꼬인 단서들을 조합해 문제를 풀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이 시리즈의 핵심 스토리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시리즈 최고작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소도시 "배런 빌" 때문입니다.

흘러가는 범죄 스토리 속에서 시골 마을의 소도시가 탄생하고 성장하고 호황을 누리다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망해가는, 그리고 일부에게 부가 집중되기는 하지만 또 다른 부활의 기회를 노리는 전형적인 소도시의 모습이 입체적으로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에 늘 나타나는 부의 집중, 몰락, 범죄의 탄생, 새로운 기회 등이 압축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하는 작은 일들이 모여 사건의 원인과 형태를 결정합니다. 


   이 소설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이 도시를 관통하는 국가적, 국제적 범죄와 연동시켜 스케일일 키우고 있습니다. 현실 속에 골치거리인 약물 문제도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 배치하고 있어 중심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배런 1세가 숨겨둔 거대한 부의 근원을 찾아가는 보물찾기 컨셉까지 동시에 진행해 이야기의 재미를 한층 더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일부 설정과 약물 관련 이야기는 경험이 없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 아주 와닿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간접 경험으로 의미가 있었습니다. 몰락한 도시에 엄청난 규모의 물류창고가 새워지고, 그 운영의 중심에 로봇이 존재하는 것도 변화되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돋보여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범죄자가 아닌 일반 시민들이 다양한 형태로 범죄 행위에 가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독자들의 마음을 참담하고 착잡하게 만듭니다. 생계 문제가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사회에 해악을 미칠 일을 원하고 보수를 충분히 지급한다면 모든 사람이 도덕률에 따라 옳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그만큼 생존의 문제는 모든 이념을 덮고도 남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이런 모습을 많이 봐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은밀히 벌어지던 일들이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숨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돈의 위력은 어마어마합니다. 한 나라의 이성이 마비될 지경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의 삶과 생계와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음은 말할 것 없습니다. 내 것이 억울하게 빼앗기는 듯한 느낌이 듦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안전망을 갖추려는 노력은 그래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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