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남자에게 했던 “고백”
그 남자와 좀 친해졌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크리스마스이브날이 되었다. 나는 저녁에 친구와 술 약속이 있었다. 밤늦게까지 술자리가 이어져서 친구와 얘기하면서 술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점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취기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쯤 내 폰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 남자였다. 뭐 하고 있냐고 묻는 말에 친구랑 술 마시고 있다고 하니 대뜸 “너 여기 올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남자와의 거리는 20분 정도의 거리였다. 나는 밤늦게까지 술을 마셔 본 적도 드물었고 밤늦은 시간에 혼자 택시를 타 본 적도 없었지만, 그 남자의 그 말 한마디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길거리에 거의 차도 없는 그 늦은 밤에 택시를 타고 가면서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취기가 좀 오른 상태였고 그날이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기 때문에 없던 용기가 생겨났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날, 다른 날도 아닌 꼭 이 날에, 내 마음속에 담아왔던 말을 그 남자한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꼭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그 말을 못 하면 이제 다시는 영영 그 말을 하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가 가자고 하는 술집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남자도 이미 어디서 술을 몇 잔 한 모양이었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그 남자가 내 폰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는 것이었다. 평소에 그 남자는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은 그 남자도 좀 취해서 그랬던 건지 직접 폰을 들고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평소와 같지 않은 그 남자의 모습에 왠지 웃음이 났지만, 나는 그 자리에서 꼭 그 남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서로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이 말을 그 남자에게 언제 할 건지 타이밍을 속으로 계속 생각하느라, 아니면 1차에서 이미 마신 술 몇 잔 때문인지, 내 머릿속은 점점 비몽사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더 늦어지자, 언젠가는 그 남자에게 꼭 하고 싶었던 그 말을 드디어 꺼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그 말을 그 남자에게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남자에게 처음으로 먼저 고백을 한, 나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했던, 그날의 나의 “고백”을 지금 나 자신이 생각해 보면, 내 생각과는 다르게 그다지 멋진 고백이 아니었던 것 같다. 지금 나 자신이 생각했을 때도 엄청 서툴고 바보같이 고백을 한 것 같은데, 그 남자는 그 순간에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제는 알 수도 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이제 집에 가자고 앞서는 그 남자를 따라서 술집을 나왔다. 그 남자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주고 나를 먼저 태워 보냈다. 그때 택시 창문 너머로 보였던 그 남자의 얼굴이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는 듯한 그 표정이, 아직도 문득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정말 내가 그 남자를 많이 좋아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때 사람들이 얘기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고백하면 이루어진다 “는 그 말을 믿었고, 크리스마스이브날이었기 때문인지 갑자기 없던 용기가 생겨서 내 마음속에 계속 담아두고 꺼낼 수 없었던 그 “고백”을 그 남자에게 할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정말 떨리고 서툴었던 그 “고백”을 그 남자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의 정말 진심을 담아서 했던 그 말이 그 남자에게는 어떻게 전달이 되었을까.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제일 솔직했던 그 “고백”을 말이다.
“나 너 좋아해”라는 그 말을, 처음으로 그 남자에게 직접 했을 때, 그날 또 깨달았던 것이, 내 안에는 여러 가지 유형의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평소의 나를 생각하면 남자에게 내가 먼저 고백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크리스마스 날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크리스마스이브날의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남자에게 했던 “고백”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날의 택시 창문 밖 너머로 보이던 그 남자의 무언가 할 말이 남아있는 듯한, 그리고 왠지 모르게 어딘가 슬퍼 보였던 그 남자의 얼굴이, 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박혀있는지, 그 이유를 나 자신조차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