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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ia Nov 16. 2024

당신이 그리고 싶은 인생이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을 Reset 할 수도 없기에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이번 인생은 망했네”라는 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암을 진단받고 나서 결혼도 점점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내가 그래도 미래에 꿈꿨던 몇 가지 일들을 하는 데 있어서 “나중에, 언젠가” 가 아닌 “되도록 빨리”라는 시간제한이 생긴 이후로, 정말 이토록 “이번 인생은 망했다”라고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인생에 정말 “Reset”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모든 오류를 없애고 컴퓨터를 초기 상태로 되돌리는 리셋 (Reset)처럼, 암 진단을 받기 전 내 평범했던 일상으로, 초기화 상태로 되돌리는 Reset 버튼이 있다면, 암 진단받기 전으로 돌아가서, 지금보다는 내 인생을 더 잘 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또 생각해 보면, 그때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지금의 모습과 많이 달라질 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 든다. 하지만 적어도 “암”이라는 그 단어와 “암”이라는 병이 주는 어두움과 우울함에서는 벗어나서 살 수 있지 않을까.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도, 나는 암을 진단받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 돌아가고 싶다. 나에게는 ”나의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그 강도만 다를 뿐이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데, 그 순간들이 오히려 암에 걸렸다는 사실 자체보다 심적으로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좋은 일이나 행복한 일이 생겨도 그 순간만 좋거나 행복한 기분이 잠깐 들다가 이내 곧 사라져 버린다. 웃기거나 재미있는 걸 볼 때 웃음이 막 나다가도 ‘아 나 암환자지’라는 생각을 하면 바로 우울한 기분이 들어버린다. 마치 생일 케이크에 꽂은 초를 불 때 그 예쁜 초의 불빛이 바로 사라지는 것처럼, 행복한 순간은 바로 꺼져 버린다.


이것은 내가 긍정적인 인간보다는 부정적이 인간 쪽에 더 가까워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행복하고 좋은 일은 그냥 잠깐 스쳐 지나가는 “찰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을 살면서 원래 행복하거나 좋은 일은 그렇지 않은 일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암 진단을 받은 이후에 훨씬 더 그 사실을 깨닫는 중이다. 이 금방 사라져 버리는 행복한 “찰나”의 순간마저도 아쉽고 소중해지는 요즘, 나의 그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많이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조금밖에 안 되는 행복의 순간들마저 내 맘 속에 이미 스며든 어둠에 금방 묻혀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요즘은 “이별”과 ”만남”에 관해서 생각에 잠기는 적이 많아졌다. 무엇이든지 “이별”은 너무 아프다. 그럼에도 “이별“이 있어야 ”만남“도 있다는 차가운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는 순간도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무엇이든지 살아있는 것은 멈춰있지 않고 변하기 마련이다. 멈춰 있으면 그것은 죽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피터팬“처럼, 나이를 한 살 더 먹어도 내 마음은 여전히 내 전성기였던, 지금보다 훨씬 어리고 젊었던 시절에 머물러 있을 줄만 알았다. 아니, 어쩌면 저 머나먼 미래의 일인 줄 알았던, 인간이면 어쩔 수 없이 늙고, 머물러 있는 것은 어느 것도 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결국은 나의 인생에도 ”끝“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그 사실을 나는 원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빨리 깨달아야 하는 걸까.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정말 신이 있다면, 그 사실을 훨씬 나중이 아니라 지금 내가 깨달아야 할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리게 만든 것일까.  


이유야 어떻든, 나는 내 인생을 Reset 버튼을 눌러서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심적으로 사실 혼란스러운 상태이다. 이것은 암 진단을 받은 지 5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인생은 되돌아갈 수도 없고, 다시 좋았던 시간들만 반복재생할 수도 없고, 인생은 단 한 번 뿐이기에, 어쩌면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누가 내 인생의 스케치북에 마음대로 낙서를 해 놓은 것 같은 이 찜찜함에, 어떻게 다시 내 원래의 인생의 그림으로 돌려놓을 수 있을지 그 방법을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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