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신경
스스로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거울에 비추거나, 유리창에 비추어야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성격과 성향도 그렇다. 무엇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환경과 사람 사이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내보낸 태도에 되돌아오는 반응으로 자신과 환경을 감각한다.
돌고래와 닮았다. 이들은 초음파로 대화를 하고 사물을 인지한다.
초음파는 파동으로 퍼지다가 바위나 산호초 같은 물체에 부딪혀 되돌아온다.
이렇게 돌아오는 파동으로 장애물을 인지하고 길을 찾아다닌다.
작은 것에도 ‘예쁘다. 잘했다’로 비춰주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작은 것으로도 충분한 세상에서 산다.
무엇을 해도 ‘겨우 이거야?’로 되돌려주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무엇을 해도 부족한 세상에서 살게 된다.
사람은 주변에서 비춰주고 되돌려주는 것들로 세상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도서 <지선아 사랑해>의 저자 이지선 씨는 음주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로 심각한 전신 화상을 입었다.
온몸이 붕대에 감겨 중환자실에 누워있을 때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극심한 통증에도 괜찮은 줄 알았다.
온몸이 붕대에 감겨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엇도 확인할 수 없었지만, 겁먹지 않았다.
물론 사실을 알게 되고 절망과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9년 간 30번이 넘는 수술과 재활 치료를 견디고 일상으로 훌륭하게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절망하지 않고 곁을 지켜준 주변 사람들 덕분이다.
오래전에 들었던 그녀의 강연에서, 어머니가 눈물 자국 없는 표정으로
딸의 옆을 지키며 비춰주었던 ‘괜찮다’가 마음에 남았다.
아이는 넘어져도 울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엄마가 놀라거나 위로해 줄 때야 비로소 울어야 하는 상황으로 알고 운다.
또 엄마가 울면 같이 울기도 하는데 아들보다는 딸이 특히 그렇다.
사람에게는 ‘거울 신경(mirror neuro)’이 있기 때문이다.
땅콩을 먹는 원숭이의 뇌와 그 모습을 보는 원숭이의 뇌는 같은 부분이 활성화된다.
이탈리아의 신경생리학자 리촐라티(G. Rizzolatti)가 운동과 관련된 뇌 연구 중에 발견한 사실이다.
자신의 내면에 타인을 거울처럼 비춘다는 의미에서 ‘거울 신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러한 특성은 원숭이보다 사람에게서 더 두드러진다.
신 귤을 먹는 사람을 보며 입안에 침이 고이거나, 드라마 주인공에 감정을 이입하고 같이 우는 것,
축구 경기를 보며 흥분하는 것 등을 통해 거울 신경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린 조카는 내가 멀리서 손가락을 움직이며 “간질간질~” 하기만 해도 간지럼을 타곤 했다.
비관주의자는 어떤 기회 속에서도 어려움을 보고,
낙관주의자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기회를 본다.
- 위스턴 처칠 -
가끔 ‘진짜는 무엇일까?’하는 생각이 든다.
‘말에는 어느 정도의 진실이 포함되어 있는 걸까?’ 도 궁금하다.
우리는 자주 근거도 근본도 없는 말에 상처 입고 휘둘린다.
비관주의자에게는 ‘어려움’이 현실이고 낙관주의자에게는 ‘기회’가 현실이다.
비관주의자와 함께 있으면 비관이, 낙관주의자와 함께 있으면 낙관이 전염된다.
어차피 해석된 세상에서 사는 것이라면, 이왕이면 좋은 해석 안에서 사는 게 좋겠다.
자신의 모습을 진실에 가깝게 비춰볼 수 있고 사랑스럽게 비춰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그렇게 사는 일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환경은 선택할 수 없었기에 지나온 시간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이제는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자신을 오롯이 비추어 진실을 보게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긍정적인 관점과 예쁜 언어,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 삶을 채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또 좋은 책, 영화, 그림들이 있다.
세상에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많다.
내가 믿기로 유유상종과 사필귀정은 진리이다.
같은 것들끼리 끌리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이 이치이다.
자연의 법칙은 과학으로 증명된다.
같은 것들끼리 끌어당기는 것은 양자역학으로 설명된다.
정수리에 물을 부으면 발꿈치로 흐르는 것은 중력의 법칙이다.
이 보편의 법칙은 사람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좋은 면을 비춰주고 다양한 관점으로 비춰준다면 그에 맞게 끌려오는 것들이 반드시 있다.
주어지는 사람과 환경에 끌려가지 않고 좋은 것들을 선택한다면,
외로운 시간을 지나 하나 둘 환경과 사람이 바뀐다.
곧 그에 따라 안겨오는 새로운 차원의 일들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