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한 집중과 힘으로 일 년을 오롯이 살아내겠다는 다짐으로 새해를 시작하였다.
운동을 하겠다, 책을 몇 권 읽겠다, 돈을 얼마 벌겠다는 구체적 목표가 아닌
숫자와 모양이 없는 이 계획은 마치 표정이 없는 얼굴 같다.
왜 이런 계획을 세웠는가를 설명하자면 먼저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를 소개해야 한다.
’신성무’라고도 불리는 동적 명상이다.
3분에서 7,8분 정도의 음악에 맞추어 추는 춤이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내적 카운팅이 없다면 결코 1분도 제대로 출 수 없다.
몸과 지성, 사방팔방으로 아우성대는 마인드를 모두 집중해야만 한다.
온전히 깨어있는 상태여야만 비로소 ‘신성무’라는 춤이 완성된다.
그 3분을 오롯이 깨어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1년을 수련했음에도 ’깨어있음’의 상태가 무엇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내 몸인데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고작 3분, 아니 단 1분도 마인드를 잡아두지 못한다는 것에 경악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감히 1년을 동일한 힘과 집중으로 살겠다는 의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 3분을 시도해 보았던 경험 덕분이다. 그 3분의 경험이 사방팔방에서 흔들어 대는 어느 프로젝트에서 주변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이 되었다.
자기 비난에 빠지지 않고, 자기 비난이 타인에게 옮겨가지 않고, 또 외부의 무엇 무엇에게로 옮겨가지 않고 다만 그 안에서의 ‘나’를 보게 하였다.
그 시간을 지나며 또 알게 된 것이 있다.
동일한 힘과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삶을 사랑함’에서 온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의도는 잘 지켜지고 있을까?
아니다, 두 달 남짓의 시간을 보내면서 3일 정도를 널브러졌다.
그럼에도 나는 내 의도를 잊지 않고 있다.
수없이 많은 날을 널브러졌던 과거와 비교하면 혁명적이라는 생각마저도 하게 된다.
그리고 또, 마치 숙명인 양 널브러지고야 마는 나를 보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는 것’이란 무엇일까.
저쪽 측면에서는 단순하지만 이쪽에선 너무나 복잡한 문제이다.
얼마 전까지 나는 생명이 고맙지 않았다. 그러니 삶이 사랑스러울 리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삶이 마냥 감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질문, 나는 이제 질문을 가지고 있다.
고양된 감정과 빛을 머금은 눈으로 시종일관 짓는 미소만이 삶을 사랑하는 자의 모양은 아닐 것이다.
심각한 표정과 진지한 질문, 감당할만한 통증과 함께 삶의 맨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이
‘사랑’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배시시 웃어지는 것,
삶의 맨 얼굴이 방긋 미소 짓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일 테다.
그러므로 가끔 널브러져도, 가끔 통증에 얼굴이 일그러져도
삶이 나에게는 도무지 친절하지 않아 그만 고개를 돌리고 싶어도
오늘 하루를 담담히 걷는다.
더 큰 사랑의 뜻을 생각하며.